지도자는 우상, 반대자는 악마
국회로 번진 낙인의 정치 멈춰야
전체주의 막아낼 방파제는 양심
미국 보수운동가 찰리 커크는 대학을 돌며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낙태와 이민, 인종, 성 정체성 등 논쟁적인 문제를 토론장으로 끌어냈다. 그의 주장은 거센 논란을 불렀다. 반대편 일각에서는 그를 ‘극우’와 ‘파시스트’, 심지어 히틀러에 빗댔다. 토론의 상대가 제거해야 할 절대악으로 바뀐 것이다. 커크는 지난해 9월 유타밸리대학교에서 토론회 도중 총격을 받고 숨졌다. 총격 혐의로 기소된 타일러 로빈슨은 연인에게 “커크의 증오는 협상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를 히틀러로 본 사람은 그를 제거하는 것까지 정의로 착각할 수 있다. 총을 쏘면서도 인류를 위해 헌신하고 십자가를 진다고 여길 수 있다. 범죄를 정의로, 살인을 거룩한 사명으로 뒤바꾸는 순간이다.
정치가 신앙의 자리를 차지하면 지도자는 우상이 되고 반대자는 악마가 된다. 내 편의 폭력은 성전으로, 범죄는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된다. 십자가와 순교의 언어까지 정치적 살인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한다. 종교가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위험한 우상숭배다. 미국 보수 진영은 대학가 집단주의에 날을 세운다.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를 거치며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이 확산돼 집단주의를 키웠다는 주장이다. 개인보다 소속 집단이 앞서면서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에게는 혐오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극우’는 ‘파시스트’와 ‘나치’, ‘히틀러’라는 낙인으로 번졌다. 커크 사건을 계기로 미디어와 정치의 언어가 한 인간을 얼마나 위험한 존재로 만들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도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한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대표 후보이던 지난달 15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에게 “여자 전두환도, 여자 히틀러도 대한민국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제명할 수 없다면 국회법을 고쳐 1년 자격정지로 국회에서 아웃시키겠다”고도 했다. 계기는 이 의원이 공동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 재조명 포럼이었다. 포럼에서는 5·18을 ‘소요사태’로 규정하고, 전두환 정권을 긍정하는 주장이 나왔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과 역사적 합의를 거스르는 발언이다. 그렇다고 포럼을 연 의원을 히틀러에 비유하고 국회에서 쫓아내겠다고 위협하는 방식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주장일수록 공개 토론과 사실로 반박하는 체제다.
‘여자 히틀러’ 이후 정치의 언어는 더욱 험악해졌다. 이번에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히틀러도 선출 권력을 내세워 나치 독재 정권을 구축했다”며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하자, 민주당은 “장 대표의 코에 콧수염만 붙이면 그대로 히틀러”라고 맞받았다. 정치권이 언어의 난투장이 돼 버린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말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서 나왔다. 그는 취임하면 국민의힘이 정당해산 요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위헌정당 해산은 정당 활동의 자유를 뿌리째 뽑는 최후의 수단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제1야당의 해산 가능성을 입에 올린 것은 예사롭지 않다. ‘국회에서 아웃’이라는 정치적 위협이 국가권력을 통한 ‘정당 제거’라는 극단의 언어로까지 치달은 셈이다.
정치권의 언어가 거칠어지는 동안 민심은 여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3.8%로 9주 연속 하락했고, 민주당 지지도도 전주보다 5.7%포인트 떨어졌다.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와 인선 논란, 부동산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민심이 멀어질수록 권력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다수 의석은 법안을 통과시킬 힘을 줄 뿐 반대자의 입을 막거나 존재를 지울 권리까지 주지 않는다.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지배적인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면 반민주 세력으로 몰린다. 그 끝에는 하나의 생각만 허용하는 전체주의가 기다린다.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양심을 억누른 사회는 숱한 파국을 낳았다. 나라가 망가진 뒤에야 서로의 잘못을 깨달을 것인가. 이제 종교라도 나서서 집단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해야 한다. 사람마다 고유한 생각과 양심을 지닌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전체주의의 유혹 앞에서 종교와 우리 사회가 함께 세워야 할 방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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