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가 뒷산에서 여린 쑥을 캐오면 부엌에 은은한 향이 가득 퍼졌다. 불린 쌀을 곱게 빻아 만든 쌀가루에 쑥을 버무린 뒤 찜기에 쪄내면 소박하지만 향긋한 쑥버무리가 완성됐다. 요즘에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의 음식으로 쑥버무리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 쑥 향에 쌀의 담백함 더해…소박한 안동의 별미
16일 경북 안동시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 따르면 쑥버무리는 연한 쑥을 멥쌀가루에 버무려 찐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쑥에 멥쌀가루를 버무려 찌는 모양새 때문에 ‘쑥털털이’라는 정겨운 별명으로도 불린다. 봄철 들에서 채취한 어린 쑥에 멥쌀가루를 골고루 묻혀 찌는 방식으로 만들어 쑥의 향과 쌀의 담백함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안동 지역에서 언제부터 쑥버무리를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쑥과 쌀가루를 이용한 떡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확인된다. 조선 중기 문신 이수광이 1613년 편찬한 ‘지봉유설’은 ‘송사(宋史)’를 인용해 고려에서 삼짇날인 상사일(上巳日)에 청애병(靑艾餠)을 만들어 음식 가운데 으뜸으로 삼았다고 기록했다. 이어 청애병에 대해 어린 쑥잎을 쌀가루에 섞어 쪄낸 떡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쑥과 곡물을 이용해 떡을 만들어 먹는 음식문화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쑥은 우리 식문화에서 봄을 대표하는 나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어린 쑥은 향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워 떡이나 국, 나물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됐다. 겨우내 부족했던 먹거리를 보충하고 봄철에 나는 식재료를 활용하는 세시 음식으로도 활용됐다.
쑥버무리는 화려한 재료나 복잡한 조리법이 필요한 음식은 아니다. 봄에 난 어린 쑥과 멥쌀가루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 예부터 비교적 간단하게 즐길 수 있었다. 쌀가루에 쑥을 버무려 찜기에 쪄내는 단순한 조리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면서 이어졌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어린 쑥을 깨끗이 다듬어 씻은 뒤 물기를 적당히 털어내고 불린 멥쌀을 곱게 빻아 만든 쌀가루와 고루 버무린다. 기호에 따라 소금이나 설탕을 넣기도 한다. 쑥과 쌀가루가 잘 섞이면 찜기에 면포를 깔고 올려 쪄낸다. 쌀가루가 익으면 쑥의 향이 은은하게 배어든 쑥버무리가 완성된다. 지역이나 가정에 따라 콩이나 팥 등을 더하기도 하지만, 쑥과 쌀가루를 중심으로 담백하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 추억의 맛 그리워도…쑥 채취는 주의해야
최근에는 떡집이나 전통음식점 등에서 계절 메뉴로 선보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가정에서 직접 쑥버무리를 만드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집 주변에서 쑥을 직접 캐 먹기 어려워진 데다, 대기오염과 자동차 매연 등으로 도심이나 주거지 인근에서 자란 쑥을 채취해 먹는 데 대한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쑥을 직접 채취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도심 하천변과 도로변 등 오염 우려 지역에서 자란 야생 봄나물을 조사한 결과, 일부 쑥에서 농산물 중금속 허용기준을 초과하는 납과 카드뮴이 검출됐다. 2015년 조사에서는 야생 봄나물 377건 가운데 37건(9.8%)이 중금속 기준을 초과했으며, 쑥은 133건 중 17건에서 기준 초과 사례가 확인됐다.
특히 중금속은 세척이나 가열만으로 제거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도로변이나 하천변, 공단 주변 등 오염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자란 쑥은 채취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식약처 역시 오염 우려 지역에서 채취한 야생 봄나물은 섭취하지 말고, 봄나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다면 직접 채취하지 말 것을 당부해왔다.
◆ 쑥 향에 담긴 추억
예전처럼 집 주변에서 쑥을 캐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기는 쉽지 않아졌지만, 그 시절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특히 직접 캔 쑥을 깨끗이 손질해 쌀가루와 버무려 쪄내던 기억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집에서 쑥버무리를 즐기고 싶다면 직접 채취한 쑥보다는 식용으로 판매되는 쑥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쑥은 흐르는 물에 충분히 씻어 흙이나 이물질을 제거한 뒤 조리하고, 식용으로 판매되는 제품이라도 보관과 손질 과정에서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제철 식재료인 쑥에 곡물을 더해 한 끼 먹거리로 만들었던 쑥버무리는 우리 조상들의 계절 식문화와 지역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음식이다.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없지만, 봄이면 문득 떠오르는 향긋한 쑥 향과 함께 한 세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향토음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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