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검토 움직임에 시민사회 각계에서 반대 여론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과거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파병을 놓고 언급된 ‘국익’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전쟁에 국민 생명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법조∙종교∙노동까지 각계에서 “파병 반대”
천주교 서울대교구 등 14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11일 공동 성명을 내고 “강대국의 이상한 논리에 우리의 군인들을 이용하지 말라”며 반대 목소리를 꺼냈다. 이들은 “미국과 이란 전쟁은 이기적인 강대국 지도자 한 명의 기습으로 시작됐다”며 “전쟁 자체를 반대하고 그 전쟁에 투입하려는 군대의 파병을 적극 반대한다. 파병 논의 자체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의평화위원회는 “대한민국 군대는 대한민국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며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군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소중한 자녀들이 이기적인 지도자의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에서 전쟁에 명분이 없다며 “군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우리가우리 군을 파병으로부터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사회에서 파병 반대 목소리가 나온 건 처음이 아니다. 앞서 9일엔 인권·노동·종교·평화 등 601개 시민단체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미국은 호르무즈 파병을 강요하지 말고 정부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법조인, 정치인들은 헌법상 평화주의 원칙을 반대 명분으로 꼽았다.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유엔 헌장 역시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평화적 해결 의무를 규정한다. 호르무즈 파병은 국내법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형연 조국혁신당 의원은 “비전투 전력을 파병한다고 전쟁이 평화가 되진 않는다”며 “이는 평화헌법을 제정한 독일∙일본에서도 위헌으로 판단된 문제”라고 검토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종교인이나 평화 활동가들은 외교∙정치적 논리가 우선할 수 없다며 ‘국익’이 국민 생명에 앞설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원경 스님은 “국익이라는 이름이 생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며 “우리 국민에게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병 요구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좌고우면 말고 즉각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위원장 박정인 목사도 “파병 검토는 헌법 평화주의를 짓밟고 우리 청년들을 불의한 전쟁터에 용병으로 내모는 일”이라며 “한미동맹이나 국익이라는 우상이 전쟁 가담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국여성연대 이윤정 상임대표는 “이재명정부는 20년 전 이라크 파병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당시에도 동맹을 이야기했고, 국익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도 “난 20년 전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됐다. 당시 거부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라크 전쟁 파병. 당시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선언문에도 전쟁 반대, 파병 반대라는 단어가 무조건 들어갔다”고 떠올렸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우리 청년들을 끌고 갔던 그 전쟁 속으로 또다시 우리 청년들을 몰아넣을 수 없다”며 “정부는 국민주권 정부인지, 트럼프 주권 정부인지 선택하라”고 비판했다.
◆국민 여론도 ‘파병 반대 45%’로 우세…정부 “결정된 바 없어”
한편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전문회사가 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0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파병 방안에 대해 응답자 45%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찬성은 36%, 모름·무응답은 19%였다. 특히 중도층에서도 반대(43%)가 찬성(35%)보다 높았고 진보층(60% 반대)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55% 반대)이 반대 여론 중심을 이뤘다.
정부는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에서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세예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에서 파병과 관련해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두희 국방부 차관도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결정된 바가 없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제질서가 극심한 혼돈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지금은 우리 힘을 키우고 외교 지평을 넓히며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더없이 필요하다”며 “오직 국민과 국익,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고 그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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