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발생률 세계 5위권…선홍색 출혈 치질 오인 위험
50세 이전 검진 사각지대…배변 변화 지속 땐 즉시 진료를
“단순 치질인 줄 알았는데…”
화장실에서 피를 본 20·30대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병명은 대장암이 아니라 치질이다. 선홍색 피가 묻어나오면 항문 주변이 찢어졌거나 치핵에서 난 출혈로 여기기 쉽고, 며칠 지나 증상이 줄면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대장, 특히 직장에 생긴 암에서도 같은 양상의 혈변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피 색깔만 보고 치질로 단정했다가 검사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대장암은 여전히 고령층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젊으면 걸리지 않는 암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매년 적지 않은 20·30대 환자가 새로 진단받고 있다.
◆20·30대 대장암, 국제 비교에서도 ‘상위권’
9일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의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신규 대장암 환자는 3만2610명으로 전체 신규 암의 11.3%를 차지했다. 갑상선암, 폐암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암이다.
젊은층 발생 양상을 보면 상황이 가볍지 않다. 국제학술지 ‘랜싯 온콜로지’에 실린 전 세계 50개국 비교 연구에서 25~49세 한국인의 인구 10만명당 대장암 발생률은 조사 대상국 중 5위로, 오히려 50~74세(11위)보다 순위가 높았다.
2020년 대비 2024년 20대 남성 대장암 환자는 114.5%, 여성은 92.6% 늘었다. 30대도 남성 84.0%, 여성 70.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60·70대와 비교하면 젊은층의 절대 발생 규모는 훨씬 작다. 하지만 혈변과 배변 이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나이만 믿고 대장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젊은 대장암의 원인은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붉은 고기·가공육 섭취, 비만, 신체활동 부족, 음주와 흡연, 염증성 장질환, 가족력과 일부 유전질환이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식생활의 서구화가 젊은층의 대장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지만, 특정 음식이나 생활습관 하나를 대장암 증가의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선홍색이면 치질”이라는 자가진단의 함정
혈변을 봤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피의 색깔이다. 선홍색이면 항문 가까운 곳 출혈로, 검붉거나 검은색이면 장 안쪽 출혈로 짐작하는 식이다.
피 색깔만으로 치질과 대장암을 구분할 수는 없다. 직장이나 항문에 가까운 대장에 암이 생기면 선홍색 혈변이 나타날 수 있다. 치질에서도 출혈량과 위치에 따라 피 양상이 달라진다.
더 눈여겨봐야 할 신호는 혈변과 함께 나타나는 배변 습관 변화다. 변을 보기가 갑자기 어려워지거나 설사와 변비가 반복되고, 배변 후에도 잔변감이 계속되는 경우다.
평소보다 변이 가늘어지거나 이유 없는 복통·복부 팽만이 반복되는 것도 확인이 필요한 증상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체중이 줄거나 쉽게 피로해지고 빈혈이 동반된다면 단순 항문 질환과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한 번의 출혈만으로 암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출혈이 반복된다면 피 색깔이나 나이를 근거로 스스로 원인을 판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조기 발견 땐 생존율 90%대, 전이되면 20%대로
대장암은 발견 시점에 따라 예후 차이가 큰 암이다.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2019~2023년 진단된 대장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암이 발생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 단계에서 94.9%였다.
주변 조직이나 림프절까지 퍼진 ‘국소’ 단계에서는 80%대로 낮아지고, 간·폐 등 멀리 전이된 ‘원격’ 단계에서는 20.4%까지 떨어진다.
같은 대장암이라도 조기에 발견하면 10명 중 9명 이상이 5년 이상 생존하지만, 원격 전이 단계에서는 5명 중 1명 수준으로 낮아진다. 혈변을 단순 치질로 여겨 오래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검진은 50세부터…증상 있으면 나이와 무관하게 진료
현재 국가암검진에서 대장암 검진 대상은 50세 이상 남녀다. 대상자는 매년 분변잠혈검사를 받고, 혈액이 확인되면 대장내시경 등 추가 검사를 받는다. 20·30대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검진’과 ‘진단’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국가암검진은 증상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암을 조기에 찾아내는 제도다.
반면 혈변이나 지속적인 배변 습관 변화 같은 이상 증상이 있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병원을 찾아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국가검진 나이가 아직 안 됐다”며 기다릴 이유는 없다.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있거나 염증성 장질환 등 위험요인이 있다면 일반인보다 이른 시점부터 의료진과 검사 시기를 상의하는 것이 좋다.
20·30대에게 대장암은 흔한 암은 아니다. 그러나 젊다는 이유로 스스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증상을 오래 지켜보는 것이 조기 발견을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혈변은 치질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 대장암의 초기 신호와 겹치는 경우가 많다. 피 색깔이 밝거나 나이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혈변이 반복되거나 배변 습관이 달라졌다면 나이보다 몸이 보내는 변화를 먼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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