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명동이 ‘K브랜드 쇼룸’으로 바뀌고 있다. 화장품이나 의류를 진열해 판매하는 데 그쳤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서울의 지역성과 한국 문화를 매장 안에 녹여내는 사례가 잇따른다.
제품을 사는 공간을 넘어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을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K뷰티에서 시작된 명동의 외국인 소비가 패션과 식품, 캐릭터 등으로 빠르게 넓어지면서 주요 기업들도 대형 체험형 매장에 힘을 싣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무신사가 전개하는 무신사 스탠다드는 이날 서울 명동8길에 ‘무신사 스탠다드 명동중앙점’을 열었다. 1~4층, 약 500평 규모로 남성·여성 패션부터 홈, 뷰티까지 한곳에 구성했다.
눈에 띄는 것은 매장 곳곳에 ‘서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26FW 캠페인 이름부터 ‘서울, 스탠다드(SEOUL, STANDARD)’로 정했다. 남산타워 등 서울의 풍경을 매장 비주얼에 적용하고 서울에서 성장한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글로벌 고객에게 강조한다.
명동중앙점에서는 원하는 그래픽을 골라 티셔츠를 만드는 ‘무신사 스탠다드 커스텀 서비스’도 처음 선보인다. 서울시 도시브랜드 ‘서울 마이 소울’과 캐릭터 ‘소울프렌즈’를 비롯해 호랑이·까치를 활용한 민화 ‘호작도’ 기반 디자인 등을 선택할 수 있다.
패션에 서울의 먹거리까지 결합했다. 1946년 문을 연 태극당과 을지로 커피한약방, 종로 낙원떡집 등 서울의 로컬 F&B 브랜드 로고와 대표 메뉴를 그래픽으로 재해석했다. 옷 한 벌을 ‘서울 여행 기념품’으로 만드는 셈이다.
기업들이 명동으로 몰리는 배경에는 압도적인 외국인 유동인구가 있다.
한국관광공사 집계를 인용한 CJ올리브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명동을 방문한 외국인은 약 450만명으로 서울 주요 상권 가운데 가장 많았다. 명동의 외국인 소비는 단순 유동인구 증가를 넘어 실제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 3월 명동에 약 950평 규모의 ‘센트럴 명동 타운’을 열었다. 성수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매장으로, 약 1000개 브랜드와 1만5000여개 상품을 갖췄다. 외국인 수요를 겨냥해 상품 구성과 쇼핑 서비스를 별도로 설계한 글로벌 특화 매장이다.
기존 ‘올리브영 명동 타운’은 지난해 전체 올리브영 매장 가운데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95%에 달했다. 명동 내 올리브영 매장의 외국인 매출은 2022년과 비교해 2025년 1923%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장 규모만 키운 것도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경쟁이 옮겨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6월 명동에 라네즈 최초의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 ‘라네즈 서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고객이 최대 45개 조합 가운데 향을 골라 립 슬리핑 마스크를 직접 만들거나, 150개 컬러 데이터를 활용해 자신의 피부색에 맞는 쿠션을 제작할 수 있다. AI 피부 분석을 거쳐 개인별 스킨케어 제품을 만드는 서비스도 운영한다.
한국에서 제품을 싸게 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경험’까지 쇼핑 상품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의 지갑은 화장품에서 패션으로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LF가 운영하는 헤지스의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스페이스H 서울’은 올해 상반기 전체 구매 고객 가운데 외국인 비중이 약 64%에 달했다. 올해 1~7월 외국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증가했고, 2023년과 비교하면 2.2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특히 한국 전통 오방색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코닉’ 시리즈가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한 고객이 같은 제품을 여러 색상으로 구매하는 이른바 ‘깔별 구매’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외국인의 국내 쇼핑이 저가 SPA나 화장품 중심에서 한국 브랜드의 디자인과 색깔을 소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품업계도 같은 흐름에 올라탔다.
올해 초 명동으로 본사를 옮긴 삼양식품은 지난 7월 사옥 1층을 ‘페포 라운지’로 개방했다. 글로벌 히트 상품인 불닭과 캐릭터 ‘페포’를 활용해 해외 관광객이 쉬면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앞서 3월 명동 사옥에서 진행한 ‘House of Burn’ 팝업에는 닷새간 8000여명이 방문했다.
명동은 올해도 외국인 소비가 가장 집중되는 상권 가운데 하나다. BC카드 집계에서 명동은 외국인 지출 1위 지역을 2년 연속 기록했고, 올해 2분기 명동 상가 임대가격지수 상승률도 서울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과거 명동의 경쟁력이 ‘한 장소에서 많은 상품을 살 수 있다’는 데 있었다면 최근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서울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제품,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태극당과 낙원떡집을 티셔츠에 넣고, 라네즈가 맞춤형 화장품을 현장에서 만들어 주며, 헤지스가 오방색을 패션에 입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명동은 더 이상 단순한 쇼핑 거리가 아니다. 기업들이 서울과 한국을 브랜드 콘텐츠로 바꾸면서 명동 전체가 거대한 ‘K브랜드 체험관’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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