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발달 단계서 처방 땐 대사작용 이상
혈압 상승·당뇨병·두개내압 상승 우려
약물 과다일 땐 말단비대증 나타날 수도
성장은 결과보다 진행속도로 정상성 판단
사춘기 전엔 1년에 4㎝∼ 7㎝ 성장 일반적
‘일단 맞히고 보자’는 식의 접근은 위험
저출생으로 아이는 줄고 있는데 이른바 ‘키 크는 주사’로 불리는 성장호르몬 시장은 4년 만에 두 배 넘게 커졌다. 성장호르몬 결핍 등 질환 치료를 넘어 자녀의 키를 조금이라도 더 키우려는 수요까지 가세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성장호르몬은 단순히 키에만 작용하는 약이 아니다. 치료 과정에서 혈당 상승과 당뇨병 같은 대사 이상부터 두개내압 상승, 성장판·골격계 이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사용이 급증하자 정부도 이달부터 국내 성장호르몬제 전 품목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성장호르몬 결핍 등 치료가 필요한 아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치료인 만큼 막연한 부작용 우려로 치료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정상적인 성장 범위에 있는 아이가 단지 키를 조금 더 키우기 위해 이 같은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지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키 크는 주사’ 된 치료제… 처방 급증에 관리 강화
6일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 등에 따르면 국내 성장호르몬제 시장은 2021년 1535억원에서 지난해 3279억원으로 4년 만에 113.6% 커졌다. 실제 성장호르몬 주사 처방 건수도 2020년 89만5011건에서 2024년 162만1154건으로 81.1% 늘었다. 같은 기간 처방액은 596억8100만원에서 1592억5400만원으로 166.8% 증가했다. 비급여 치료까지 감안하면 실제 사용 규모는 더 크다.
사용량 증가와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접수되는 이상사례 보고도 늘고 있다. 성장호르몬 주사제 관련 이상사례는 2020년 660건에서 2024년 1809건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중대 이상사례는 같은 기간 9건에서 165건으로 늘었다. 다만 이상사례는 약 투여 뒤 발생한 증상 등을 보고한 것으로 성장호르몬과 인과관계가 확인된 ‘부작용 발생 건수’와는 다르다.
성장호르몬 주사 처방이 급격히 늘어나자 식약처는 지난 1일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소마트로핀 성분 성장호르몬제 8개사 21개 전 품목에 위해성관리계획(RMP)을 적용했다. 제약사는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안전사용 자료를 의료현장에 배포하고 국내외 이상사례 등을 포함한 관리계획 이행 결과를 매년 제출해야 한다.
안문배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 내분비분과 교수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성장호르몬 결핍처럼 치료가 필요한 아이가 부작용이 무섭다는 이유로 치료를 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는 아이가 단지 키를 더 키우기 위해 위험과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은 성장뿐 아니라 체내 대사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치료 과정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고 혈당이 높아질 수 있으며 드물게 제2형 당뇨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성장호르몬이 과도하게 작용하면 손발이나 턱 등 신체 말단부가 커지는 말단비대증이 나타날 수 있다. 두개내압이 상승해 두통이나 구역감, 시야장애가 나타날 수 있고, 급격한 성장 과정에서 대퇴골두 골단분리증(SCFE)이 발생해 고관절이나 무릎 통증, 절뚝거림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기존 척추측만증이 있는 아이는 성장속도가 빨라지면서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주사 부위의 가려움이나 발진 등 피부 이상반응도 나타날 수 있다. 안 교수는 “치료 중에는 통상 6개월 간격으로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검사 등을 하면서 혈당과 인슐린 저항성, 갑상선·간 기능, 콜레스테롤, 골연령과 척추 상태 등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키 작다고 치료 대상 아냐… ‘성장속도’ 봐야
그렇다면 어떤 아이가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할까. 부모들은 흔히 또래보다 몇 ㎝ 작은지를 먼저 보지만 의료진이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성장속도’다. 사춘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1년에 약 4∼7㎝씩 자란다. 또래보다 작더라도 자신의 성장곡선을 따라 꾸준히 자란다면 현재 키만으로 치료 필요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성별·연령 또래보다 키가 3백분위수 미만이거나 1년에 4㎝ 미만으로 자란다면 원인 평가가 필요하다. 안 교수는 “부모들은 현재 아이가 몇 ㎝인지에 가장 관심을 갖지만 의학적으로는 성장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비롯해 터너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 누난증후군, 만성 신부전, 부당경량아로 태어난 뒤 따라잡기 성장이 되지 않은 경우, 특발성 저신장증 등에 시행된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한 아이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수록 정상적인 성장궤도를 따라잡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성장호르몬을 맞을수록 더 크게 자란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정상적으로 자라는 아이가 주사를 맞았을 때 최종적으로 몇 ㎝를 더 얻는지는 개인별로 확인하기 어렵다. 안 교수는 “치료 후 180㎝까지 컸다고 해도, 주사 덕분에 2∼3㎝ 더 큰 것인지 원래 180㎝까지 클 아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 결핍처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분명한 효과가 있지만 건강한 아이의 최종 키를 원하는 만큼 높여주는 치료는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일단 맞혀보고 얼마나 크는지 보자’는 식으로 접근할 치료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별한 질환이 없다면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균형 잡힌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습관부터 점검해야 한다. 안 교수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성장호르몬 치료부터 생각하기보다는 아이가 정상적인 속도로 자라고 있는지, 치료가 필요한 원인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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