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심화와 맞물려 국민연금이 ‘치매머니’를 겨냥한 공공신탁 서비스를 선보일 만큼 노후 자산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특히 고령층 스스로 선제적인 자산 관리에 나서면서 유언대용신탁 활용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지난 8월 말 기준 7조671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4조5023억원)보다 70.3% 늘어난 규모로 불과 8개월 만에 3조원 넘게 증가했다.
유언대용신탁은 금융소비자가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신탁하고 사망 이후 지정한 수익자에게 재산이 이전되도록 설계하는 상품이다. 생전 자산관리뿐 아니라 사후 상속과 재산 처분까지 함께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령층의 종합 자산관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상속재산으로 인해 가족의 다툼이 예상되거나 특정 자녀 혹은 손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경우에도 사용하지만 최근엔 해외에 있는 자녀들이 상속처리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거나 1인 가구로 기부단체에 기부하고 싶은 때에도 유언대용신탁을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유언대용신탁 잔액의 증가 속도도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5대 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2020년 9446억원에서 2021년 1조3852억원, 2022년 2조945억원, 2023년 3조1317억원, 2024년 3조5058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신탁시장 성장이 빨라진 배경에는 고령층과 자산의 급격한 증가세가 있다. 2025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주의 평균 자산보유액은 6억95만원에 달한다. 주택 보유 비중도 높아서 국회미래연구원의 ‘고령인구 자산 분포와 불평등 구조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12억원 초과 고가주택의 경우 2024년 고령층 비중이 54.2%로 과반을 넘어섰다. 높은 자산을 보유한 고령층 인구가 늘면서 자산관리와 상속 수요가 커지고, 유언대용신탁 잔액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치매머니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유언대용신탁의 한 종류인 치매안심신탁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연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치매 고령자가 보유한 자산인 치매머니는 154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4%에 달했다. 2050년에는 488조원까지 불어나 GDP의 15.6%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국민연금도 올해 4월 ‘치매안심 재산관리서비스’를 출시했고, 지난 7월에는 4건의 계약이 성사됐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공공신탁제도 시범사업의 일환인 해당 서비스는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를 앓아 스스로 재산관리가 어려운 기초연금수급자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국내 첫 공공신탁 상품으로 아직 시범사업이기에 지원대상과 위탁재산에 제한을 두고 있다. 위탁재산 범위는 현금성 자산으로 한정하고 위탁재산 상한액은 10억원으로 설정했다.
앞으로 관련된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시중 은행 관계자는 “이미 은행들이 승계, 증여 서비스와 함께 묶은 컨설팅을 만들 정도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며 “국민연금 공공신탁 등장으로 신탁의 대중화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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