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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기 어디서 끌어오나”…‘전력 고속도로’ 전쟁 막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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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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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늘면서 전기를 얼마나 생산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필요한 곳까지 보내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대한전선 제공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수백㎞ 떨어진 대도시와 산업단지로 보내려면 대규모 송전망이 필요하다. 특히 해상풍력처럼 발전 지역과 전력 소비 지역이 멀리 떨어질수록 장거리 대용량 송전에 유리한 초고압직류송전(HVDC)의 역할이 커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5년 약 485TWh에서 2030년 950TWh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AI 중심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증가 속도는 이보다 더 빠르다.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2~3년이면 충분하지만 발전·송전 인프라는 계획부터 구축까지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전력망 투자를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까지 빠르게 늘면서 세계 전선업체들의 경쟁 무대가 HVDC로 옮겨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대한전선과 LS전선이 국가 핵심 송전망 사업을 놓고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다.

 

한국전력이 추진하는 ‘동해안~수도권 HVDC’ 사업이 대표적이다. 동해안에서 생산한 대규모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으로, 향후 국내 HVDC 시장의 기술 기준을 가늠할 사업으로 꼽힌다.

 

대한전선은 지난 6월 동해안~동서울 500kV HVDC 2단계 사업을 약 1463억원에 수주했다. 500kV HVDC XLPE 케이블과 부속 자재를 생산·공급하고 시공까지 맡는 턴키 방식이다. 미국에서 320kV급 전압형 HVDC 프로젝트를 확보한 데 이어 국내 대형 프로젝트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LS전선 역시 같은 달 동해안~수도권 HVDC 2단계 사업을 약 1460억원 규모로 수주했다. 앞서 2024년 1단계 동해안~신가평 사업에서 약 880억원을 수주해 두 단계 공급 규모를 합치면 약 2340억원에 이른다.

 

두 회사가 모두 국가 기간 전력망에 이름을 올리면서 국내 HVDC 시장도 사실상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들어갔다.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대한전선은 500kV 전류형 HVDC와 525kV 전압형 HVDC 케이블 시스템을 개발해 시험·인증 역량을 확보했다. 올해 1월에는 충남 당진 케이블공장에 약 7000㎡ 규모의 HVDC 테스트센터를 준공했다.

 

이곳에서는 최대 640kV급 육상·해저 HVDC 케이블 2개 회선을 동시에 시험할 수 있다. 제품을 만든 뒤 외부 시험 일정을 기다리는 대신 개발부터 시험·인증까지 한곳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LS전선은 한발 먼저 실제 전력망 적용 경험을 쌓았다. 525kV급 고온형 HVDC 케이블의 도체 허용 온도를 90도로 높여 송전 용량을 기존 제품보다 최대 50% 확대했고, 동해안~신가평 구간에 적용했다. 올해 7월에는 525kV·80도급 HVDC 해저케이블의 장기신뢰성시험(PQ)도 통과했다.

 

경쟁의 무대는 공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초고압 해저케이블은 수십~수백㎞ 길이의 케이블을 생산하는 것만큼 운송하고 바다에 정확히 포설한 뒤 해저에 매설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제조사가 포설선과 시공 기술까지 확보하려는 이유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해저케이블 1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충남 당진에 해저 2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공장은 640kV급 HVDC와 400kV급 HVAC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내 최대 높이인 187m VCV(수직연속압출) 타워도 들어설 예정이다. 2027년 가동이 목표다.

 

배도 직접 확보했다.

 

대한전선은 기존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 ‘팔로스(PALOS)’에 이어 올해 1만톤급 ‘스칸디 커넥터(Skandi Connector)’를 추가로 인수했다.

 

스칸디 커넥터는 한 번에 최대 7000톤의 해저케이블을 실을 수 있다. 대규모 해상풍력 외부망이나 장거리 HVDC 사업처럼 한 번에 많은 케이블을 싣고 나가야 하는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 지난달에는 영광낙월 해상풍력 프로젝트 투입도 시작했다.

 

포설 다음 단계인 ‘매설’에도 손을 뻗었다. 지난달 팬스타로보틱스와 손잡고 HVDC 해저케이블을 매설할 수 있는 원격조종 수중로봇(ROV) 국산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해외 장비와 전문 인력 의존도를 낮추고 제조부터 포설·매설까지 묶겠다는 전략이다.

 

LS전선도 LS마린솔루션과 손잡고 해저케이블 설계·생산부터 시공·유지보수까지 연결하는 턴키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국내 두 업체 모두 제품만 납품하는 전선회사에서 해저 전력망 전체를 맡는 사업자로 변신하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경쟁 규모가 더 크다. 이탈리아 프리즈미안(Prysmian)은 독일의 대규모 전력망 프로젝트인 ‘SuedLink’를 수행하고 있다.

 

독일 북부 풍력발전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남부 산업지역으로 보내는 사업으로, 프리즈미안이 담당하는 구간만 약 580㎞다. ±525kV HVDC 케이블을 이용해 2GW의 전력을 전송한다.

 

프리즈미안은 SuedLink뿐 아니라 SuedOstLink, A-Nord 등 독일의 주요 HVDC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각각 수백㎞에 달하는 지중 케이블망을 통해 북부의 풍력 전기를 전력 소비가 많은 남부로 보내는 사업이다.

 

프랑스 넥상스(Nexans)는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갔다. 그리스 크레타섬과 키프로스를 잇는 ‘Great Sea Interconnector’ 사업에서 525kV HVDC 해저케이블을 공급한다. 케이블 길이는 양극 기준 2×900㎞에 달하며 일부 구간의 수심은 3000m를 넘는다. 계약 규모만 14억3000만유로다.

 

넥상스는 올해 3월 실제 수심 3000m 환경에서 525kV HVDC 케이블을 설치하고 시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에는 케이블과 접속재 등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의 3000m 수심 적용 인증까지 마쳤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잇는 ‘Tyrrhenian Link’에서도 지난해 말 500kV HVDC 해저케이블을 수심 2150m에 설치했다. 세계 전선업체들의 기술 경쟁이 전압을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얼마나 깊고 먼 곳까지 안정적으로 연결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업체들이 동시에 바라보는 다음 시장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다.

 

서해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 등 전력 소비지역으로 옮기려면 장거리 대용량 해저 송전망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HVDC 해저케이블뿐 아니라 공장과 시험설비, 포설선, 해저 매설장비까지 갖춘 업체가 수주에서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전선은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외부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글로벌 해양 인프라 업체인 벨기에 얀데눌(Jan De Nul), 네덜란드 보스칼리스(Boskalis)와 각각 HVDC 해저케이블 사업 협약을 맺었다.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에서 케이블 제조와 해양 시공 역량을 결합하기 위한 포석이다.

 

LS전선 역시 독일 테넷(TenneT) 등 해외 사업 경험을 앞세워 국내외 HVDC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회사가 밝힌 글로벌 HVDC 누적 수주액은 3조원을 넘어섰다.

 

AI 데이터센터가 급증한다고 해서 모든 전력이 HVDC를 통해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배전망과 변전소, 일반 초고압 교류망까지 함께 늘리는 요인이다.

 

HVDC가 특히 필요한 곳은 발전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해상풍력 등 대규모 전원을 장거리로 연결해야 하는 경우다. 그럼에도 AI와 반도체, 재생에너지가 동시에 전력 수요와 송전 거리를 늘리면서 전력망 자체가 산업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전선업체들의 경쟁도 케이블 한 가닥의 성능을 넘어섰다. 누가 더 높은 전압의 케이블을 만들 수 있느냐에서, 누가 먼저 생산하고 시험해 배에 싣고 바다에 깔아 실제 전력망을 완성할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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