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세후 1000만원. 쌍둥이라면 2000만원이다.
기업이 직원의 출산과 육아에 직접 돈을 쓰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과거 출산 축하금이나 선물 수준에 머물렀던 사내 복지가 수백만~수천만원의 현금 지원으로 커지고, 난임 치료부터 육아휴직과 근로시간 단축까지 지원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M&S 소속 테크·라이프 솔루션즈 부문에서 시행 중인 ‘육아동행지원금’을 받은 직원 가정은 이달 기준 513곳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280가정에서 불과 8개월 만에 233가정이 늘었다.
육아동행지원금은 출산 횟수와 관계없이 자녀 1명당 세후 100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해 1월 한화갤러리아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 8개 계열사에서 시작해 한화비전과 아워홈 등을 포함한 16곳으로 확대됐다.
계열사별 수혜 가정은 아워홈 174곳으로 가장 많았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91곳, 한화세미텍 49곳, 한화비전 46곳, 한화갤러리아 38곳 순이다.
지원금이 실제 육아 과정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도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3월 쌍둥이를 출산한 김신영 아워홈 책임은 한꺼번에 2000만원을 받았다. 네 식구가 살 집을 넓히기 위한 이사 비용에 지원금을 보탤 계획이다.
4월 아이를 얻은 금지수 한화비전 사원 역시 지원금을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 활용했다. 류정현 한화갤러리아 대리는 출산 이후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프리미엄 유모차를 장만했고, 둘째 아이를 얻은 김태윤 한화갤러리아 대리는 가족 차량을 7인승 대형차로 바꿨다.
출산지원금이 단순한 ‘축하금’에서 주거와 이동, 육아용품 등 출산 이후 불어나는 생활비를 보전하는 실질적인 자금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직원들의 반응도 뚜렷했다. 지원금을 받은 513명을 대상으로 한 회사 설문에서 응답자의 99%가 일·가정 양립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지원금이 추가 출산을 고려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응답도 95%에 달했다.
파격적인 현금 지원으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기업은 부영그룹이다.
부영은 직원이 아이를 낳을 때 자녀 1명당 1억원을 지급한다. 올해 2월에는 출산 직원 35명에게 총 36억원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한 직원은 쌍둥이를 낳아 2억원을 받았다.
2024년 제도를 본격 시행한 이후 누적 지급액은 134억원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지급 대상은 28명이었지만 올해는 36명의 자녀가 지원 대상이 됐다. 한 차례 1억원을 받은 뒤 둘째 이상을 낳아 다시 지원받은 직원도 11명에 달했다.
이 제도는 채용시장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해 부영그룹 공채에서는 일부 직군 경쟁률이 최고 180대 1까지 치솟았다. 회사 측은 1억원 출산장려금을 포함한 가족친화 복지제도가 젊은 구직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출산지원금 하나만으로 출산 증가나 채용 경쟁률 상승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직원 수와 연령대, 채용 규모 등 여러 변수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금성 출산 복지가 기업 이미지는 물론 인재 확보 전략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현금 지원 경쟁은 특정 대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매일유업은 임직원에게 첫째 출산 시 400만원, 둘째 600만원, 셋째 이상 1000만원의 출산축하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 유아용 분유와 이유식 등 약 200만원 상당의 제품도 지원한다.
지원은 출산 전후 전 과정으로 이어진다. 난임 시술비와 출산휴가, 배우자 출산휴가, 임산부 근로시간 단축은 물론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영유아 육아지원금, 자녀 의료·재활교육비까지 운영한다.
특히 자사 임직원에 그치지 않고 대리점 직원의 자녀 출산 때도 축하금과 분유를 지원하고 있다.
식품기업이라는 업종 특성을 살려 현금과 자사 제품, 육아지원 제도를 하나로 묶은 사례다.
포스코이앤씨도 출산장려금을 첫째 300만원, 둘째 700만원, 셋째 이상 1000만원까지 지급하고 아기 축하 선물로 상품권 50만원을 추가 제공하고 있다.
출산 이전에는 난임 치료 시술비를 회당 최대 100만원씩 재직 기간 최대 10회까지 지원한다. 출산 이후에는 육아휴직을 최대 2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육아기 재택근무와 근로시간 단축 제도도 운영한다.
기업들의 육아 경쟁은 ‘얼마를 주느냐’에서 ‘실제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느냐’로도 옮겨가고 있다.
롯데하이마트는 출산한 직원에게 별도 신청 없이 육아휴직으로 전환하는 자동육아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남성 직원에게도 1개월의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했다.
롯데 계열사들은 태아보험과 출산 경조금, 출산 선물, 산전후 휴가, 육아휴직과 자녀돌봄휴직 등도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이 현금 지원만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를 낳은 뒤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는지가 출산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에서도 육아 관련 제도의 활용은 빠르게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는 10만명을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 증가했다. 전체 육아휴직급여 수급자 가운데 남성이 차지한 비중도 38.8%까지 올라왔다.
최근 국내 출생 지표 자체도 반등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출생아는 14만580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9430명, 15.4% 늘었다. 상반기 기준 증가 인원과 증가율 모두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출생아 수는 2024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24개월 연속 전년 동월보다 증가했다.
출산하면 일회성 축하금을 주던 수준에서 자녀 수에 따라 수백만~1억원을 지급하고, 난임 치료와 주거·보육, 남성 육아휴직, 복직 이후 근무 형태까지 책임지는 방향으로 지원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한화M&S의 육아동행지원금 수혜 가정이 500곳을 넘어선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출생을 정부 정책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직원 확보와 장기근속, 조직 경쟁력과 직결되는 경영 과제로 받아들이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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