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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日 상왕 “장례 간소하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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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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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의 왕정 국가들에선 고령의 국왕이 생전에 그만두는 것이 흔한 일이다. 네덜란드가 가장 대표적이다. 1815년 이후 4명의 국왕이 조기에 퇴위해 자녀로 하여금 뒤를 잇게 했다. 올해 59세로 비교적 젊은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의 경우 지난 2013년 어머니인 베아트릭스(88) 여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았다. 네덜란드, 벨기에와 더불어 ‘베네룩스 3국’으로 불리는 룩셈부르크 역시 군주에 해당하는 대공(大公)이 살아 있는 동안 자녀에게 자리를 넘긴 전례가 여럿 있다. 나이가 많아 건강이 나쁘고 공무 수행도 어려운 국왕의 존재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차라리 공화정이 낫겠다’는 목소리가 고조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고육책일 것이다.

 

아키히토 일본 상왕. 1989년 즉위해 2019년까지 30년간 왕좌에 머물고 같은 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상왕으로 물러나 앉았다. 연합뉴스
아키히토 일본 상왕. 1989년 즉위해 2019년까지 30년간 왕좌에 머물고 같은 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상왕으로 물러나 앉았다. 연합뉴스

북유럽 국가들 왕실의 문화는 서유럽과 사뭇 다르다. 현재 80세인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왕실은 ‘은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나 또한 그럴 의향이 전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군주는 오직 죽음을 맞이할 때에만 그 의무에서 면제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건강 악화에 시달렸으나 “1991년 즉위 당시 의회에서 ‘평생 군주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서약했다”는 이유를 들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왕좌를 지켰다. 그래서일까, 2024년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86) 여왕이 장남인 왕세자에게 양위하는 길을 택했을 때 층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2016년 8월 당시 아키히토(明仁) 국왕이 아들인 나루히토(德仁) 세자한테 왕위를 물려줄 뜻을 밝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일본 역대 국왕들 중 생전에 그만두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나 앉은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키히토 이전 거의 200년 동안에는 그런 일이 전무했다. 아키히토 또한 퇴위 결심을 굳힌 배경에 대해 ‘고령(82세)으로 국왕 임무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사유를 들었다. 이런 상황을 미처 예상치 못한 일본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률을 정비하느라 실제 은퇴는 2019년 4월에야 실현됐다.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의 장례식 모습. 1901년 태어나 1926년 즉위한 히로히토는 무려 63년간 왕좌를 지키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전으로 붕괴한 뒤 다시 경제 대국으로 일어서는 현대사의 격동기를 지켜봤다. 방송 화면 캡처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의 장례식 모습. 1901년 태어나 1926년 즉위한 히로히토는 무려 63년간 왕좌를 지키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전으로 붕괴한 뒤 다시 경제 대국으로 일어서는 현대사의 격동기를 지켜봤다. 방송 화면 캡처

현재 92세이고 오는 12월이면 93세가 되는 아키히토가 “내 장례는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라”는 뜻을 밝혀 눈길을 끈다. 3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궁내청(宮內廳)은 아키히토의 방침을 받들어 앞으로 치를 국상(國喪) 규모를 예전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줄일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1989년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87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에는 왕궁 밖에 별도의 장소를 조성하고 각국 정상 등 약 1만명이 참여한 가운데 장례식을 진행했다. 앞으로는 왕궁 안에서 장례를 치르고 참석자도 2500명 정도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왕실 행사에 지나치게 많은 경비를 쏟아붓는 것이 젊은 세대의 반감을 사 자칫 ‘왕정 폐지론’으로 이어질까봐 염려한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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