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문이 닫히고 나면 보호자는 대개 이렇게 기억한다. ‘수의사가 차분했다.’ ‘설명이 정확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따라온다. ‘저 사람에게는 이게 그냥 매일 하는 일이겠구나’ 하고…
그렇지 않다. 당신도 그 방을 나서며 궁금했을지 모른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스무 해 가까이 임상 수의사로 일해 왔다. 지금도 동물병원에서 일한다. 안락사를 진행할 때, 특히 오랫동안 봐 온 동물일수록 마음이 많이 무겁다. 그럼에도 그 방에서는 티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목소리를 고르고 손을 고정한다. 차분해 보이는 건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 필요한 일이어서다.
마지막을 확인하고 나면, 잠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그 몇 초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나를 위로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그 방의 공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다. 이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남겨진 사람의 쪽에서만 본다.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연재를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다.
학술지 ‘데스 스타디스(Death Studies)’에는 동물 돌봄 종사자들이 겪는 상실과 애도를 다룬 연구가 실려 있다. 연구진은 온라인 설문에 참여한 동물 돌봄 종사자 139명의 응답을 분석했다. 결과는 심각했다. 응답자의 51.1%는 ‘지난 한 달 동안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낀 날이 있었다’고 답했다. 또 66.2%는 동물을 돌보며 생기는 감정에 대처하는 것이 ‘다소 어렵다’고 답했다. 이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아니라, 연구 참여자들이 스스로 보고한 우울감∙절망감 경험에 관한 결과다. 이 연구에서 오래 남는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연구진은 이들이 겪는 고통이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의 애도와 깊이 닮아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자신이 돌보던 동물이 죽거나, 입양을 가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실의 크기만이 아니다. 동물을 돌보는 일에서 생기는 슬픔은 그저 일로 치부되거나, 충분히 말하고 위로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연구는 제한적인 사회적∙조직적 지원이 이러한 상실을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박탈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로 남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 보호자에게도 꽤나 익숙한 말이다. “고작 동물인데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많다. 회사에 사흘을 쉬겠다고 차마 말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부모상에는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을 이 경우에는 설명해야 한다. 곁에 있던 수의사도 비슷하다. 병원 문을 나서면 곧바로 다음 환자가 기다린다. 방금 있었던 일을 두고 슬퍼할 틈이 없다. 그러니 그날 진료실에는 슬퍼하는 사람이 둘이었던 셈이다. 이 말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수의사가 딱해서가 아니다.
이별을 겪은 뒤 많은 보호자가 그 순간을 혼자 견뎌냈다고 기억한다. 병원을 나서서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다. 아무도 이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방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 사람도 그 아이의 이름을 알았고, 아이의 마지막 숨을 함께 지켜봤다. 처음 예방접종을 하러 왔던 날부터 기록이 남아 있다. 아이가 몇 킬로그램이었는지, 어떤 약에 잘 맞았는지, 언제부터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는지를 그 사람이 안다.
자책의 굴레가 걸리는 곳이 하나 더 있다. 그날의 결정을 오롯이 ‘자기가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락사의 기준은 병원마다 수의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대개는 보호자가 요청한다고 그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담당 수의사가 의학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진행하지 않는다. 치료를 더 해도 소생 가능성이 없고 통증이 지속된다는 판단. 두 사람이 거기에 함께 이르렀을 때 문이 열린다. 그러니 그 결정도 보호자 혼자 내린 것이 아니었다.
물론 수의사가 보호자의 슬픔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슬픔의 크기를 잰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날 당신이 느낀 것이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된다. 그 일을 매일 마주하는 사람조차 똑같이 느꼈으니까. 혹시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며 슬프게 혼자였다고 생각한다면, 부디 한 번만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그 방에 함께 있던 사람의 얼굴을. 결국 그 방에는 처음부터 두 사람이 있었다.
글∙박근필 성장연구소 소장
■박근필 성장연구소 소장은
●읽고 쓰고 말하는 힘으로 사람의 성장을 돕는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수의사, 작가, 커리어 스토리텔러 ●베스트셀러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외 저서 4권 출간 ●전국 초∙중∙고 30곳 넘는 학교 진로∙직업 특강 ●부산시교육청 영재교육진흥원 교원 직무연수 ●부산시청 공무원 200여명 특강 ●펫로스 치유 글쓰기(펫러스)∙진로독서 강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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