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타고 낮아진 미술 소비 문턱
“관람·평가 문화 바뀌는 新 미술 공론장”
짙은 보랏빛 현호색이 강변을 가득 물들이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꽃밭 너머로 잔잔한 강물이 고요히 흐르고, 그 위로 연보랏빛 하늘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물든 풍경이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아득하게 다가온다.
경기도 양평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는 최종원(28)씨의 작품 <강변에 핀 현호색>이다. 그는 이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영상으로 올렸다.
“이른 아침 강변을 산책하다 마주한 봄꽃, 현호색입니다.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과 ‘수줍음’으로, 아침의 차가운 이슬 공기에 꽃말의 의미를 더해 그려봤습니다. 다들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바랍니다.”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업로드 2주를 넘긴 지난 1일 오전 기준 조회수 395만 뷰를 기록했다. 구매 가능하냐는 문의부터 꿈을 응원한다는 댓글도 쇄도하고 있다.
요즘 최씨와 같은 무명·신진 작가들 사이에서 SNS를 통한 작품 홍보가 활발하다. 이들은 SNS에 그림과 가격, 구매 방법을 담은 10초 안팎의 짧은 영상을 올린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매우 단순한 영상임에도 기본 수만 뷰에서 많게는 백만 뷰를 훌쩍 넘긴다.
가격 부담도 적다. 몇만원부터 비싸도 수십만원대에 그치다 보니 영상 댓글이나 메시지를 통해 작가에게 직접 구매 가능 여부를 묻는 글이 줄을 잇는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SNS의 추천 알고리즘이 있다. 정적인 사진을 올리는 일반 게시물이 기존 팔로워를 중심으로 노출되는 반면, 짧은 영상인 ‘릴스’는 이용자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팔로우하지 않은 계정의 콘텐츠까지 추천한다.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그림 한 점이 불쑥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관객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 전시장이나 갤러리를 찾아갔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을 타고 작품이 먼저 관객을 찾아오는 셈이다.
작가 입장에서도 별도의 전시 공간을 빌리거나 추가 홍보비를 들이지 않고 작품을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품뿐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창작 과정, 작품에 담긴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관객과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최씨 역시 “작가이자 화가는 항상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전시에서는 모든 사람을 상대할 수 없어 하고 싶은 말이나 표정을 전달하기 어렵지만, SNS 영상을 활용하면 작품뿐 아니라 내 가치관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계에서는 SNS가 미술계 진입이 쉽지 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의 작품 관람·평가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존에는 어떤 작품이 전시될 것인지 등이 소수의 선택에 의해 좌우됐지만, 앞으로는 관람과 평가 방식도 달라질 것”이라며 “온라인에서 좋은 작품을 공유하고 평가하는 흐름이 확산하면 누구나 참여하는 미술 공론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작품을 알리고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작가들의 새로운 모습은 세계일보 유튜브 <29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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