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익스플로라토리움’에 가보니
자체 제작한 전시물 650여종 선봬
진자운동 실험에 빛 활용 그림까지
과학 원리·자연 현상 등 체험 중점
현대차그룹, 2032년 서울에 조성
학교·지역 잇는 ‘과학 플랫폼’ 목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체험형 과학관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 관계자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설립자 프랭크 오펜하이머의 철학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미국의 저명 핵이론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동생이자 실험물리학자인 프랭크 오펜하이머는 1969년 익스플로라토리움을 창립했다. 그가 과학관을 설립한 것은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질문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놀이’로 시작하는 탐구
익스플로라토리움은 물리·생물 같은 전통적인 과학 분야를 넘어 예술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감정, 이타성과 협력, 암묵적 편견 같은 사회과학 영역도 전시 안으로 끌어들인다.
전시장에는 과학과 예술, 기후변화 등을 아우르는 650여종의 전시물이 놓여 있었다. 모두 직접 개발하고 제작한 것들이다. 제작실도 벽 뒤에 숨기지 않았다. 관람객은 현장에서 직원들이 금속을 깎고 시제품을 조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막 나온 시제품은 관람객의 반응을 시험한 뒤 다시 고쳐진다. 전시장 전체가 관람 공간이자 ‘배움을 연구하는 실험실’이라고 한다.
탐구의 출발점은 ‘놀이’다. 먼저 눌러보고, 돌려보고, 흔들어본다. 설명문을 읽고 정답을 확인하는 일은 그다음이다. 익스플로라토리움 관계자는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을 ‘과학을 배우는 사람’으로 느끼는 정체성이 강해진다”며 “‘나는 주변 세계를 배울 수 있고 실제로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근본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이곳과 손잡은 이유도 이러한 철학에 공감해서였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와 로봇,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기술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관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직접 탐색하고 질문하며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국내에 마련할 계획이다.
◆진자가 춤추고 햇빛은 그림으로
이날 현장 안내를 맡은 교육 담당자 켄 핀은 “익스플로라토리움은 설명해주는 곳이 아니라 탐색하는 곳”이라면서 “가이드 투어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체험 방식이지만 여러분이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만큼 몇 가지를 보여드리고자 한다”며 취재진을 이끌었다.
이곳에선 버튼을 누르면 정해진 설명과 답이 나오는 전시물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손잡이를 돌리거나 추를 움직이고 거울 앞을 오가면서 관람객이 스스로 변화를 찾아야 했다. 600개가 넘는 전시물은 무지개와 메아리, 조수, 세포의 움직임 등 자연현상을 눈앞에서 관찰하고 직접 실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눈길을 끈 전시 중 하나는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진자가 매달린 ‘진자뱀’이었다. 추를 한꺼번에 놓자 처음에는 가지런히 움직이던 진자들이 곧 파도처럼 출렁였다. 움직이는 뱀처럼 S자를 그리던 진자들은 곧 홀수 번째와 짝수 번째로 갈라져 대칭을 이뤘고, 시간이 더 지나자 다시 일렬로 나란히 움직였다. 복잡하고 불규칙해 보이는 움직임 속에도 일정한 시간마다 되풀이되는 패턴이 숨어 있었다.
“이 전시는 단순히 진자의 움직임만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패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우리가 그 패턴을 어떻게 관찰하고 이해하는지를 함께 보여줍니다.”
설명문에는 “진자는 줄의 길이에 따라 왕복하는 속도가 달라진다”며 “가장 긴 진자는 30초 동안 15번, 가장 짧은 진자는 24번 왕복하도록 설계돼 있어 처음에는 함께 출발했다가 차츰 어긋나며 여러 패턴을 만들고, 30초 뒤 각자 정해진 횟수의 왕복을 마치면 다시 나란히 정렬된다”고 적혀 있었다.
전시장 한쪽 벽에는 빛으로 그려진 화려한 추상화가 놓여 있었다. 예술가 밥 밀러의 작품을 재현한 ‘선 페인팅(Sun Painting)’이었다. 핀이 그 앞에 놓인 여러 개 손잡이 중 하나를 돌리자 벽에 펼쳐진 빨강과 파랑, 노란색 빛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전혀 다른 그림이 됐다.
“제가 지금 태양빛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옥상에 설치된 거울이 해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햇빛을 전시장 안으로 비추고, 이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여러 색으로 갈라지는 것을 이용한 전시물이었다.
‘혼돈 진자(Chaotic Pendulum)’도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원형 구조 안에 연결된 여러 막대를 힘껏 돌렸다 놓자, 어떤 막대는 거의 멈춘 듯하다가 갑자기 크게 튀었고 다른 막대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요동쳤다. 같은 위치에서 출발시키는 것처럼 보여도 움직임은 번번이 달라졌다.
“첫 순간에는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첫 선택이 결정되면 이후의 모든 움직임이 거기서 이어집니다. 아주 작은 초기 차이가 뒤의 수많은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이 혼돈이론의 출발점 중 하나입니다.”
핀은 누군가는 원리를 궁금해하고, 누군가는 그저 최대한 세게 돌려본다고 설명했다. 어느 쪽도 틀린 체험은 아니었다.
◆2032년 서울 GBC에 과학관 설립
이러한 탐구 공간이 2032년 서울에 마련된다. 현대차그룹은 익스플로라토리움과 협업해 서울 삼성동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를 대표할 체험형 과학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과학자와 교육자, 예술가 등이 전시 기획?연구에 참여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과학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양측은 이를 위해 지난 4월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장재훈 부회장, 윌리엄 F 멜린 익스플로라토리움 이사회 의장, 린지 비어만 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익스플로라토리움 관계자는 “우리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센터가 서울에 들어서면 서울 시민뿐 아니라 한국, 더 넓게는 아시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과학관을 짓기 전에 올해 10월부터 11월까지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무료 팝업 전시 ‘해브 펀 위드 사이언스(Have Fun with Science)’도 연다. 기초과학 원리를 활용해 관람객이 직접 만들고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체험형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인 뒤, 현장에서 수렴한 관람객의 경험과 반응을 향후 현대차그룹의 GBC 과학관에 반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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