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유럽의 풍경은 낯설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클래식 축제 BBC 프롬스는 7월17일 개막 무대를 피아니스트 임윤찬에게 맡겼다. 80주년을 맞은 아비뇽 페스티벌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어를 공식 초청언어로 선정하고, 총 47편의 공식 작품 중 9편을 한국 작품으로 채웠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공개 석상에 좀처럼 나서지 않던 한강은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프로그램 ‘카페 데 이데’에 참석해 수상 후 처음으로 공개 대담에 나섰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극 ‘새’는 이자벨 위페르와 이혜영이 함께 무대에 섰고, 교황청 명예극장 2000석이 가득 찼다. 런던 웨스트엔드에는 서울 신림동을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 ‘더 라스트 맨’이 한국에서 창작된 그대로 수출되어 무대에 올랐다.
무엇이 이 낯선 여름을 가능하게 했는가.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K팝과 K드라마가 만들어낸 한국에 대한 관심이 스스로도 몰랐던 한국 공연예술로 향하는 통로가 됐다고 말했다. 대중문화가 입구를 열었고, 그 문으로 한국의 언어가, 역사가, 예술이 걸어 들어갔다.
아비뇽에서 상연된 작품 중 전통 연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긴: 연희해체프로젝트>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제주 4·3을 다룬 <섬 이야기>, 제주 해녀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물질’, 이자람이 쓰고 작창한 판소리 ‘눈, 눈, 눈’도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 이 중 한강 작가의 텍스트가 제주 4·3 학살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오랫동안 한국 내에서도 말하기 어려웠던 역사, 즉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수십년간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 이야기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예술 축제의 무대에서 한국어 그대로 울려 퍼졌다. K팝이 열어준 문으로 한국이 가장 오래 감추어온 상처가 세계 앞에 섰다.
춤과 노래로 세계를 매혹시킨 K컬처가 그 뒤에 숨겨져 있던 학살과 침묵과 애도의 언어까지 함께 세계 앞에 내놓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한국 문화가 세계에서 인정받았는가’가 아니다. 관객들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국가 폭력과 침묵의 기억, 그리고 그것을 마침내 말하는 언어의 힘에 공명한 것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한강 작가의 언어가 아비뇽의 관객에게 무엇을 촉발했고, 그곳에서 어떤 대화를 가능하게 했는지이다. 한국으로부터 출발한 질문들이 다른 국가들과 공유할 수 있는 대화의 언어가 될 수 있다면, 한류는 비로소 문화 교류의 이름에 값하게 된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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