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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에서 포심이 가장 느린 ‘파워 피처’ KT 고영표 “리그 유일의 사이드암 선발 투수라는 건 제게 대단한 자부심이죠”[남정훈의 비욘드 더 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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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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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남정훈 기자] 흔히 파워 피처를 정의할 때 패스트볼이 빠르면 파워 피처, 느리면 피네스 피처로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정의다. 파워 피처는 상대 타자로부터 탈삼진을 뺏어낼 수 있는 투수를 이르는 말이다. 패스트볼 구속이 빠르면 탈삼진을 뺏어내기에 용이하기에 빠른 패스트볼=파워 피처라는 공식이 생겨난 것일 뿐이다. 패스트볼 구속이 느려도 강한 변화구로 삼진을 잡아낸다면 얼마든지 파워 피처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서 ‘많은 탈삼진’은 보통 이닝당 탈삼진이 1개를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100이닝을 던졌을 때 100개 이상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파워피처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KT의 사이드암 선발 고영표는 파워 피처라고 할 수 있다. 올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18명의 선발 투수 중 포심을 아예 던지지 않는 최민석(두산)을 제외한 17명 중 고영표의 포심 평균 구속은 135.5km로 유일하게 140km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영표는 리그 최강의 마구로 꼽히는 체인지업을 앞세워 올 시즌 21경기 122.1이닝을 던져 133개의 탈삼진을 뺏어냈다. 리그 전체에서도 곽빈(두산·153개), 앨빈 로드리게스(롯데·140개)에 이은 3위다. 탈삼진 3위에 올라있는 고영표가 파워 피처가 아니라면 누가 파워 피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고영표는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KBO리그 LG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피홈런 2개 포함 6안타를 맞았지만, 탈삼진 6개를 솎아내며 3실점(3자책)으로 올 시즌 12번째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KT의 16-4 승리를 이끌었다.

 

18,19일에 LG에게 1-9, 0-1로 패했던 KT로선 3연전 스윕을 피하기 위해서 이날 승리가 절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발 마운드에 오른 고영표는 3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다 4회 문보경에게 커브를 던지다 투런포를 얻어맞은 뒤 곧바로 타석에선 오지환에게 체인지업을 통타당해 백투백 홈런을 허용하며 1-3 역전을 허용했지만, 이후 6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티면서 승리의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

 

KT 타선도 6회까진 한 점에 그쳤지만, 7회부터 LG 불펜진의 제구 난조를 틈타 빅이닝을 만들며 7-3으로 역전해 고영표에게 승리투수 요건을 만들어줬고, 8회와 9회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며 대승을 거두며 스윕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기 뒤 더그아웃에서 취재진과 만난 고영표는 “팀의 연패에 빠져있어 흐름이 좋지 않아 오늘 꼭 6이닝을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던졌다. 석점을 내준 건 아쉽지만,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경기 전까지 통산 1298.1이닝을 소화했던 고영표는 2회 오지환을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통산 1300이닝을 채웠다. KBO리그 역대 47번째. KT 소속 투수로는 최초다. 고영표는 “한 팀에서 이렇게 1300이닝을 책임졌다는 게 개인적으로 뿌듯하다. 앞으로 쭉쭉 더 쌓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워낙 체인지업이 독보적이라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고영표였지만, 이닝당 탈삼진이 1개가 넘어가는 건 올 시즌이 처음이다. 고영표 본인이 분석하는 올 시즌 유독 탈삼진 능력이 올라온 원동력은 ABS에 적응하기 위해 피칭 디자인을 바꾼 결과다. ABS는 상하 스트라이크존을 활용하기에 유리하다. 옆으로 던지는 고영표는 그간 좌우 스트라이크존을 잘 활용했던 투수였지만, ABS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부단한 고민을 했다. 그는 “높은 존에 투심을 던지면서 타자들을 좀 어렵게 만든 게 삼진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를 상대하는 타자들은 낮은 체인지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높은 코스로 패스트볼이 들어오다 보니 루킹 삼진도 늘어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고영표는 땅볼 유도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다 보니 피안타 비율이 높다. 이 부분도 탈삼진이 늘어난 배경으로 보고 있다. 고영표는 “제가 피안타가 많은 투수잖아요. 많은 타자를 상대하다 보니 삼진이 많아진건가 싶기도 해요. 범타가 줄고, 타자를 상대할 때 탈삼진으로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게 많아지다 보니 그런 것 아닐까요”라며 웃었다.

 

이날 승리투수가 되며 2021년(11승), 2022년(13승), 2023년(12승), 2025년(11승)에 이어 통산 다섯 번째로 두 자릿수 승수를 채운 고영표. 현재 다승왕 레이스는 임찬규, 톨허스트(이상 LG), 올러(KIA), 최민석(두산)이 11승으로 공동 1위에 올라있다. 고영표도 충분히 다승왕 욕심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는 “다승왕 타이틀이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죠. 경쟁자들이 바로 코앞에 있는 거니까 의식이 안 될 순 없으니까요”라면서 “승은 운이 많이 따라줘야 한다. 10승은 평균자책점 4~5점도 할 수 있는 거다. 이제 타격 쪽이 터졌으니까 그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운도 따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영표는 현재 KBO리그 유일의 잠수함 유형의 선발투수다. 이는 고영표의 자부심 중 하나다. “리그 유일의 잠수함 선발투수라는 자부심, 마음 속에 대단히 갖고 있어요. 너무 뿌듯해요. 앞으로도 ABS를 잘 활용해서 팬들의 기억에 많이 남는 선발 투수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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