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40도 넘으면 선풍기 피해야”…CDC는 실내 32.2도부터 주의
일부 혈압약·이뇨제 탈수 위험 키워…인슐린·의료기기도 고온 주의
“전기요금 아끼려다 열사병 올 수도?”
에어컨 전기료가 부담스러워 선풍기만 틀고 버티는 집이 적지 않다. 평소라면 선풍기 바람이 땀을 말리면서 몸을 식혀준다. 실내까지 극도로 달아오른 날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실내 온도가 40도를 넘으면 선풍기가 오히려 몸을 데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기준을 더 낮게 잡는다.
폭염 대응 지침에서 실내가 화씨 90도, 섭씨로 약 32.2도를 넘으면 선풍기가 체온을 높일 수 있다며 냉방이 되는 곳으로 이동할 것을 권고했다.
1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5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서 신고된 환자는 4460명이다. 2011년 감시체계가 도입된 이후 두 번째로 많았다. 이 가운데 29명은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로 집계됐다. 전체 환자의 85%인 3792명이 7~8월 두 달 사이 발생했다.
◆실내 40도 넘는데 선풍기만?…몸 식히기는커녕 더 데울 수도
선풍기가 항상 체온을 낮춰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피부에서 땀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기는 방식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주변 공기가 지나치게 뜨겁고 습도까지 높아지면 열을 내보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뜨거운 공기를 계속 몸 쪽으로 보내면 선풍기만으로 충분한 냉각 효과를 얻기 어렵다. WHO는 선풍기를 40도 미만에서 사용하고, 40도를 넘으면 다른 냉방 수단을 이용하도록 권고한다. CDC는 실내 32.2도 이상부터 선풍기가 체온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안내한다.
기관별 기준에는 차이가 있다. 고온의 실내에서 선풍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같다. 집을 식히는 방법도 바꿔야 한다.
낮에 바깥 기온이 실내보다 높다면 창문과 블라인드·커튼을 닫아 햇빛과 뜨거운 공기의 유입을 줄인다. 밤에는 바깥이 더 시원해졌을 때 창문을 열어 열기를 빼는 것이 좋다.
WHO는 하루 중 2~3시간이라도 냉방이 되는 시원한 장소에 머물 것을 권한다. 에어컨을 사용할 경우에는 27도 정도로 설정하고 선풍기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어지럽다고 혈압약 끊었다간…폭염 때 더 꼼꼼히 봐야 할 처방전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에게 폭염은 더 까다롭다. 나이가 들수록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심혈관질환이나 신장질환, 당뇨병 같은 기저질환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
복용 중인 약도 영향을 줄 수 있다. CDC는 이뇨제와 일부 심혈관계 약물, 항콜린성 약물, 일부 정신과 약물 등이 폭염 때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뇨제는 체액 감소와 탈수, 전해질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다.
일부 혈압약은 혈압을 더 떨어뜨려 어지럼증이나 실신·낙상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탈수 상태에서는 신장으로 가는 혈류가 감소해 신장 기능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더운 날 약을 임의로 줄이거나 끊어서는 안 된다. CDC는 폭염에 대비해 복용 약을 미리 점검하되 약의 용량이나 복용 시간을 바꾸는 문제는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여러 종류의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고령자는 더위가 심해지기 전에 약과 수분 섭취 계획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뜨거운 차 안에 둔 인슐린…약과 의료기기도 더위 탄다
폭염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약품과 의료기기도 지나친 열에 노출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슐린이다. CDC는 인슐린을 뜨거운 차량이나 직사광선 아래 두지 말라고 권고한다. 장시간 고온에 노출되면 약효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혈당측정기와 시험지, 인슐린 펌프도 높은 온도에 노출되면 손상될 수 있다.
무조건 차갑게 보관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외출할 때 보냉 가방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인슐린을 얼음이나 냉매에 직접 닿게 해 얼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제품마다 보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설명서에 적힌 적정 온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흡입기 등 다른 의약품과 의료기기도 예외가 아니다. CDC는 흡입기가 극심한 고온에서 오작동하거나 파손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맥주로 수분 보충?”…커피 한 잔이 탈수는 아니지만 과음은 피해야
한여름 차가운 맥주나 아이스커피를 찾는 사람도 많다. 여기서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술은 수분 보충용 음료가 아니다.
알코올은 소변과 땀 배출을 늘리고 더위에 대한 판단을 흐릴 수 있다. 폭염 때 과음할수록 위험해질 수 있다. WHO와 CDC도 더운 날에는 알코올 섭취를 피하거나 제한할 것을 권한다.
커피는 조금 다르다. 카페인에 이뇨 작용이 있는 것은 맞지만 평소 마시는 커피 한두 잔이 곧바로 탈수를 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련 연구에서도 하루 3~4잔 이내의 적당한 커피 섭취는 물과 비슷한 수준의 수분 공급 효과를 보인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WHO와 CDC는 폭염 때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피할 것을 권고한다. 폭염 때 가장 기본적인 음료는 물이다. 갈증이 나기 전에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게 좋다. 질병관리청도 갈증을 느끼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물을 마시도록 권고한다.
신장질환이 있거나 의료진으로부터 수분 섭취량을 제한하라는 처방을 받은 경우에는 무작정 물을 늘리지 말고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
2025년 온열질환자의 30.1%는 60세 이상이었다. 추정 사망자 29명 중 60세 이상이 18명으로 62.1%를 차지했다.
선풍기 하나로 버티고, 어지럽다고 약을 끊고, 갈증이 난다고 맥주를 마시는 평소의 선택이 기록적인 더위에서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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