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데이터 활용 늦어져 격차 심화
업계 “‘先 허용·後 규제’로 전환해야”
하지만 한국의 실제 도로에서 기술을 시험하려면 국토교통부의 임시운행허가를 받고 운행구역과 안전요건 등 각종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카메라에 찍힌 사람 얼굴이나 차량 번호판이 포함된 원본 영상을 AI 학습에 활용하려면 개인정보 규제도 넘어야 한다.
미국 테슬라가 전 세계 지역을 누비며 160억㎞의 누적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는 동안, 각종 규제에 묶인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 11월 기준 테슬라의 0.08% 수준인 1306만㎞ 확보에 그쳤다.
# 돌봄·안내로봇을 개발하는 국내 B업체도 AI 학습 단계에서부터 규제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사람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눈썹이 움직이는 방향이나 입꼬리의 미세한 변화, 시선과 목소리까지 학습해야 하지만, 현행 개인정보 보호 규정상 개인정보가 담긴 영상과 음성 원본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자이크 처리한 얼굴과 변조된 음성만으로는 AI가 감정과 행동을 세밀하게 구분하는 데 한계가 있다.
# 수소차를 생산하는 C업체는 신차나 수리 차량의 빈 수소탱크에 수소를 처음 채울 기준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상적인 수소차 충전을 위한 기준은 있는데 정작 생산·정비 현장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특수상황에 맞는 기준이 없는 제도적 공백 때문에 생산·정비과정에서 충전이 막히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AI와 로봇, 자율주행, 수소 등 한국의 미래산업 현장에선 제도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시차’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실제 현장에서 신기술을 시험하고 데이터를 쌓아 곧바로 기술 고도화와 상용화로 이어가는 동안, 국내 기업들은 허가와 규제 특례를 받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특히 AI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확보하고 반복 학습하느냐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규제로 실증과 데이터 활용이 늦어질수록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신기술을 기존 규정에 맞춰 허용 여부를 따지는 ‘포지티브 규제’ 대신 금지된 것 외에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일단 시장 진입과 실증을 허용하고, 문제가 확인되면 규제를 보완하는 ‘선 허용·후 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현 경총 규제개혁팀장은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AI·로봇 등 첨단산업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며 “반도체를 넘어 피지컬AI·로봇 등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하려면 ‘선 허용·후 규제’ 원칙으로 기업들이 자유롭게 도전하고 혁신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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