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증거 불충분’ 재심청구 기각
즉시항고로 서울고법서 재심개시 결정됐으나
본안 재심청구 기각했던 재판부에 배당
유족 측 “예단 없는 공정한 재판 불가”
‘기각 결정 재판부’ 배당배제·재배당 신설 건의도
군사정권 시절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 국가폭력을 겪은 피해자의 재심청구를 기각했던 재판부가 즉시항고로 개시된 재심 공판을 맡게 되자, 피해자 유족과 변호인이 법관 기피신청을 내고 첫 재판에 불출석하기로 했다. 법원은 예정됐던 재판을 연기했다.
국가폭력 피해자 고 서병호씨의 유족과 대리인인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재심 1회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유족 측은 이달 14일 해당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서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사건 재심 첫 공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우인성) 심리로 이날 오후 4시45분 예정돼 있는데, ‘추후 지정’으로 기일이 변경됐다.
서씨는 1971년 5월 육군 보안사령부에 영장 없이 검거돼 약 19일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고, ‘역용공작’에 이중간첩으로 이용됐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1972년 3월 징역 12년 및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고 1983년 만기 출소했다. 서씨는 생전인 2017년 1차 재심을 청구했으나 2020년 기각됐고 이듬해 사망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24년 1월 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하고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확인해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하자, 유족은 같은 해 6월 2차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형사27부는 심문기일 지정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실규명결정과 재심 권고 판단을 기재하지 않은 채, 지난해 7월 불법체포·감금 및 고문·가혹행위 증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재심청구를 기각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이에 불복한 유족 측의 즉시항고로 서울고등법원은 올 4월 원심 결정을 취소하고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를 인정해 재심개시 결정을 확정했다. 하지만 재심개시 확정 후 열리는 본안 공판이 과거 청구를 기각했던 형사27부에 다시 배당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유족 측은 재배당 요구 검토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기피신청에 이르렀다.
유족 측은 기피신청 사유로 형사소송법상 제척사유와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를 들었다. 최 변호사는 “기피대상 재판부는 불법구금·가혹행위의 존부라는 실체적 사실관계에 관해 증거의 취사선택과 사실인정을 마친 뒤 기각 결론을 내렸고, 그 판단은 상급심에서 위법하다는 이유로 취소됐다”며 “이미 예단을 가진 재판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유족과 변호인은 대법원에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개정을 건의했다. 상소심에서 파기환송된 사건을 원심 재판부가 아닌 다른 재판부에 배당하는 실무와 마찬가지로, 재심개시결정이 확정된 재심공판사건 역시 재심청구를 기각한 법관이나 재판부에 배당하지 않도록 배당배제 규정을 신설하고 재배당 사유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 변호사는 “피고인은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2021년 사망했고, 유족이 구하는 것은 특별한 재판이 아니라 당연히 진행돼야 할 공정한 재판”이라며 “법원이 기피신청을 신중히 판단하고 배당 예규를 조속히 개정해 국가폭력 피해자가 공정성에 의심 없는 재판부에서 재심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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