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발탁’ 86세대… 최연소 의원 당선
16대 대선 앞두고 탈당 배신자 낙인
黨 복귀 뒤 李와 한배… 초대 총리로
‘尹 계엄’ 일찌감치 예측해 화제도
당선연설서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
‘원조 386’ 정치인의 선두에 섰던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의 정치 인생은 ‘질주’와 ‘추락’, 그리고 ‘귀환’으로 압축된다. 32세에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해 ‘차세대 주자’로 승승장구했지만, 2002년 대선을 앞둔 탈당을 계기로 정치 인생의 긴 암흑기를 맞았다. 18년의 야인 생활을 견딘 끝에 국회로 돌아온 뒤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장자방’으로 불리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이재명정부 초대 국무총리까지 지낸 그는 8·17 전당대회에서 집권여당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김 대표는 당선 직후 연설에서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20살의 서울대 학생회장으로 공인의 길에 선 지 40년 만에”라며 민주당 대표가 됐다고 자신의 정치 역정을 돌아봤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평생 스승”, 이 대통령을 “평생 동지”라고 표현하며 두 사람과의 인연도 강조했다.
◆DJ 발탁… 2002년 탈당 뒤 추락
김 대표는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시절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 등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0년 김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고, 야권 통합 과정에 참여하면서 ‘민주 통합의 첫아들’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8세였던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는 조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기획실장 겸 대변인을 맡아 당선을 도우며 선거 전략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32세의 나이로 영등포을에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7년 대선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밀착 수행하며 첫 정권교체를 도왔고, 2000년 재선에 성공한 뒤 민주당 대변인과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등을 거치며 ‘차세대 주자’로 승승장구했다. 2002년에는 38세의 나이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돼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 맞섰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정치 인생은 급전직하했다. 16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후보가 이끌던 국민통합21에 합류하면서다. 김 대표는 이후 당시 선택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통한 대선 승리를 위한 판단이었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민주당 지지층에는 노 후보를 등진 ‘배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철새’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김민새’라는 조어도 따라붙었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도 정청래 후보가 이른바 ‘후단협 사태’를 거론하며 김 대표의 2002년 탈당을 공격했다.
김 대표 자신도 훗날 2002년의 선택을 가장 큰 정치적 오류로 꼽았다. 탈당 뒤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미국과 중국에서 유학하며 재기를 모색했고, 2008년 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다시 정치 전면에 섰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2010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면서 또다시 정치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4년에는 원외 정당인 ‘민주당’을 창당해 정치 활동을 재개했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해 친정으로 돌아왔다.
◆18년 만의 귀환… 李 ‘장자방’서 당대표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다시 영등포을에 출마해 당선된 김 대표는 18년 만에 국회로 돌아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을 맡으며 정책통으로 입지를 넓혔다. 당선 당시 그는 지난 시간을 “험하고 고독했던 광야의 시간”이라고 표현하며 “국민과 하늘이 가장 무섭고 감사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이 대통령과는 2022년 대선 때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췄다. 관계가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같은 해 지방선거 패배 뒤에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대통령을 향해 “이재명 의원의 사적 판단이 앞섰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정치적 ‘콤비’로 굳어진 것은 2024년부터였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연임에 도전하자 김 대표는 최고위원에 출마해 사실상 러닝메이트 역할을 했고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됐다. 그해 8월에는 윤석열정부의 계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당시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뒤 그의 경고는 다시 주목받았다.
2025년 조기 대선에서는 당 집권플랜본부장을 맡아 선거전략과 새 정부 정책 기조 설계에 앞장섰다. 윤석열정부의 각종 의혹을 묶은 ‘이채양명주’ 구호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계엄·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의 핵심 전략가로 자리 잡은 김 대표는 이재명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총리 취임사에서는 “청춘은 의분이었습니다. 삶은 곡절이었지만, 축복이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정치 역정을 돌아봤다. 총리 재임 중에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를 지휘했고,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聊D 밴스 부통령을 만났다. 중동전쟁 장기화 국면에서는 비상경제본부장을 맡아 범정부 경제 대응을 총괄했다. 총리직을 내려놓고 당으로 돌아온 그는 8·17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김 대표는 당선 연설에서 18년의 야인 시절을 “광야 생활”이라고 다시 표현하면서 “긴 세월 힘들었지만 견뎌낸 제 자신에 울컥한다”고 했다. 이어 “제 40년 정치 한 줄 결론은 하늘과 국민이 가장 두렵고 감사하다”면서 “결국 정치는 국민이 한다는 무서운 반성이 저를 살렸다”고 말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요배(遙拜)](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8/17/128/20260817517329.jpg
)
![[조남규칼럼] 부동산 세제에 낀 혈전(血栓)](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8/17/128/20260817517358.jpg
)
![[기자가만난세상] ‘닥치고 공급’ 약속만으론 부족하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8/17/128/20260817517304.jpg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세계 축구를 누가 망가뜨리는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8/17/128/20260817516128.jpg
)


![헝가리 고속도로서 폴란드 버스 전복… 20여명 사상 [오늘의World+]](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8/16/300/20260816512520.jpg
)



![[포토] 사나 '깜찍한 꽃받침'](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8/13/300/20260813515677.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