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축목표 상한·하한선 함께 제시
법적 의무 가벼워져 정책 후퇴
모호한 정책 대신 숫자 못 박아야
국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변이 없다면 개정안은 8월 안에 처리될 계획이다. 이 법은 진작 고쳐져야 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기존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와 정량적 기준을 법에 담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헌재는 이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미래세대에 떠넘겨졌고, 이것이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회에 준 시한은 2026년 2월까지였으나,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그리고 여러 선거 속에 논의는 오랜 기간 표류했다. 그러니 지금 국회가 서두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개정안은 지난 7월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기후특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 통과만 남았다. 기후특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감축 목표를 하한과 상한, 두 숫자로 정해놓았다. 구체적으로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5년까지 53∼61%, 2040년까지 69∼80%, 2045년까지 84∼90% 범위에서 줄이도록 한 것이다.
다만, 실제 규제는 숫자가 낮은 하한에만 적용된다. 상한을 지킬 법적 의무는 없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들은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산업계는 하한에 맞춘 감축 목표를 지키는 것 역시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하한과 상한을 함께 못 박아두는 이 범위형 구조 자체다. 이는 올해 열린 올해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수립 공청회에서 나온 바 있다. 당시 한국법제연구원 소속 패널은 범위형 목표 설정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법적인 논의에서는 하한선이 중요한 것이지 상한선은 착시만 일으킬 뿐 법적 의미가 전혀 없다. 오히려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방식이다.”
이 우려는 개정안을 도출한 의원들 안에서도 있었다.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은 하한과 상한을 함께 둔 목표치가 사실상 감축 목표를 하한선에 맞추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 우려했다. 기후특위 법안소위 위원장을 맡았던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 역시 여야 대치 속에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합의를 끌어냈지만, 애초 본인이 발의했던 법안보다 후퇴한 수준에 머물렀다고 인정했다.
하한과 상한, 조기 감축과 선형 감축 등 여러 단어 속에서 본질이 계속 지워지고 있다. 혼란 속에서 개정안은 통과되려 하는데, 정작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맥락과 단어를 하나하나 짚어가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논의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은 하나라고 본다.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에 떠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 점에서 국제 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에 최근 실린 연구가 인상 깊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진이 쓴 이 논문은 각국이 파리협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펴봤다.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도보다 훨씬 낮게(well below) 유지하고, 나아가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진은 각국이 이 ‘훨씬 낮게’라는 말에서 모호함을 찾아내 서로 다르게 해석해 왔다는 점을 짚었다. 이 모호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파리협정 내 목표를 지키는 쪽이 아니라 목표를 느슨하게 푸는 쪽으로 쓰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호함은 얼핏 유연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책이 잘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로 쓰여왔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결론은 간단했다. 기후정책의 경우 여지를 남겨두면 누군가 반드시 그 틈을 파고들어 약하게 만든다. 그러니 처음부터 하나의 분명한 숫자로 강하게 못 박아야 한다는 것. 파리협정의 ‘훨씬 낮게’든, 한국의 범위형 목표 모두 약한 방향으로 움직이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답은 분명하다. 범위형이라는 착시와 혼란을 남겨둘 것이 아니라, 상한 수준의 강한 숫자 하나로 못 박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모호함을 남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고 시작하는 싸움을 하는 셈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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