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특보 중 최고 단계인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지난 7일 오전 10시 강원 홍천군 화촌면 한 단호박 농가. 농장주 이성근(50)씨와 외국인 계절근로자 5명은 뜨거운 햇볕 아래 연신 허리를 굽히며 수풀에 가려진 단호박을 찾아 수확하고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밭에는 그늘이 전혀 없어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날카로운 풀에 긁히는 것을 막으려고 긴팔·긴 바지에 장갑까지 착용한 탓에 이들의 온몸은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평소보다 이른 오전 5시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이씨는 “수확 시기를 놓칠 수 없기 때문에 날이 덥다고 작업량을 줄이거나 멈출 수는 없다”며 “오전 중에 빨리 끝내기 위해 다른 농가에 배정된 계절근로자 1명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씨와 계절근로자들은 틈틈이 그늘로 이동해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얼음물과 커피로 더위를 식혔다. 필리핀에서 온 조단(32)씨는 “한국이 더 더운 것 같다”며 “사장님이 소형 선풍기가 달린 냉방조끼를 사줘 그나마 견딜 만하다”며 땀을 훔쳤다.
이씨 농가는 상황이 괜찮은 편이다. 다른 지역 일부 농가에서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위한 쉼터는커녕 물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계절근로자는 “법으로 정해진 휴식시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일이 많아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루 종일 햇볕에 달아오른 몸을 식혀야할 숙소조차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고 했다. 또 다른 계절근로자는 “컨테이너로 된 숙소에 에어컨이 있지만 작동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며 “틈날 때마다 샤워하면서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폭염 작업장에서 근로자에게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5도 이상이면 오후 2~5시 옥외작업을 중단하고 38도 이상이면 긴급조치 작업을 제외한 모든 옥외작업을 멈추도록 권고한다. 이를 위반해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폭염 속 작업하던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망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이날 경기 여주에서는 밭일을 하던 30대 외국인 여성 근로자가 실종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은 전날 오후 ‘몸이 좋지 않다’며 휴식을 취하러 간 뒤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앞선 지난달 4일에는 충북 괴산에서 풀베기 작업을 하던 베트남 국적 20대 근로자가 쓰러져 숨졌고 25일에는 해남에서 밭일하던 태국인이 어지럼증을 호소한 뒤 사망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연이은 사망에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전날 충남 예산을 찾아 현장을 점검했다. 김 본부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폭염 속 온열질환에 노출되지 않도록 폭염 3대 기본 수칙인 물·그늘·휴식을 보장하고 중대경보 발령 시 행동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지자체들은 농촌 일손 핵심인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전남 순천시는 한국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폭염특보를 인지하기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해 다국어 안전교육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추진 중이다. 휴게시설 설치여부와 생수 비치 상태도 확인하고 있다. 보성군은 최근 외국인 계절근로자 숙소를 전수 점검했다. 냉난방 설비가 작동 여부와 샤워 시설, 위생 상태 등을 중심으로 꼼꼼히 살폈다.
지역 농업인들도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홍천군 청년 농업인들로 구성된 ‘강원 플라이 무인항공’은 열화상 카메라를 탑재한 드론으로 현장을 살피며 작업자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온열환자가 발생하면 양산과 생수 등 구호물품을 현장에 투척해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외에도 농업인들은 작업시간을 앞당기고 냉방용품을 제공하거나 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등 폭염에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수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만큼 강제력을 높이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정부가 폭염안전수칙을 만들었으나 노동 현장에서는 딴 세상 얘기”라며 “폭염특보에도 노동을 강요해 목숨을 잃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는 만큼 노동자를 지키는 안전규정을 강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재고용 요청 권한이 사용자에게만 있어 외국인 근로자들은 불이익이 두려워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형적인 제도가 불평등한 환경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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