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반복되거나 발열·황달·호흡곤란 동반되면 곧바로 응급실
주요 원인은 담석과 과음…알코올성 췌장염 앓았다면 금주 원칙
“치맥 먹은 뒤 명치 쥐어짜.”
무더운 여름밤, 치킨이나 삼겹살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였다. 몇 시간 뒤 명치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고 구토까지 이어진다. 체한 줄 알고 소화제를 먹었지만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단순한 체기가 아닐 수 있다. 명치 통증이 등까지 번지고 구토가 계속된다면 급성 췌장염을 의심해야 한다. 전날 먹은 음식만 탓할 게 아니라 담석이 있는지, 술을 과하게 마시지는 않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과식보다 담석·과음 살펴야
급성 췌장염은 췌장에 갑자기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대표적인 원인은 담석과 술이다. 미국소화기학회가 2024년 내놓은 진료지침에 따르면 여러 연구에서 담석은 전체 급성 췌장염 원인의 40~70%, 알코올은 25~35%를 차지했다. 이는 국내 환자만을 집계한 수치가 아니라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제시한 범위다.
과식 자체는 급성 췌장염의 대표적인 원인이 아니다. 담석이 있는 사람이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담낭이 수축하면서 담석이 움직일 수 있다. 담석이 담관과 췌관이 만나는 부위를 막으면 췌장액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은 담석성 췌장염이 과식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은 날 저녁 또는 다음 날 새벽에 잘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알코올성 췌장염은 과음한 날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야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먹은 사람에게 모두 췌장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고지방 음식은 담석이 있는 사람에게 발병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특정 음식 하나만으로 급성 췌장염의 원인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차가운 맥주도 그 자체가 원인은 아니다. 술의 온도보다 마신 양과 음주 습관이 문제다. 알코올이 췌장을 손상하는 과정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과도한 음주가 급성 췌장염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등까지 번지는 상복부 통증
급성 췌장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심하고 지속되는 상복부 통증이다. 명치 부근에서 시작된 통증이 등이나 옆구리로 번지기도 한다. 똑바로 누우면 통증이 더 심해져 몸을 웅크리거나 앞으로 숙이는 환자도 있다.
메스꺼움과 구토, 미열, 빠른 맥박이 동반될 수 있다. 담관이 막히면 피부나 눈 흰자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나타나거나 소변 색이 짙어질 수 있다.
증상만으로는 체기나 위염, 담낭염, 심근경색 등과 구별하기 어렵다. 의료진은 특징적인 상복부 통증, 혈중 아밀라아제 또는 리파제 수치가 정상 상한의 3배 이상 상승한 경우, 영상검사에서 확인된 췌장염 소견 등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를 충족하면 급성 췌장염으로 진단한다.
복부 초음파는 담석 여부를 확인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CT는 모든 환자에게 처음부터 시행하는 검사가 아니다. 진단이 불분명하거나 입원 치료를 시작한 뒤 48~72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 때 췌장과 주변 조직의 손상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시행할 수 있다.
상복부 통증이 심하거나 시간이 갈수록 악화할 때는 소화제만 먹으며 기다리면 안 된다. 구토가 반복되거나 발열·황달·호흡곤란이 동반될 때도 곧바로 진료받아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급성 췌장염이 의심되고 통증이 심하면 신속하게 응급실을 방문하라고 권고한다.
◆예방은 원인부터 막아야
여름철 더위나 탈수 자체는 주요 진료지침이 꼽는 급성 췌장염의 대표 원인이 아니다. 물을 충분히 마시면 탈수를 막는 데 도움이 되지만, 물을 많이 마시는 것만으로 췌장염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방의 핵심은 원인을 차단하는 것이다. 과음을 피하고 알코올성 췌장염을 앓았다면 술을 끊어야 한다. 사람마다 알코올에 대한 반응과 위험요인이 다른 만큼 췌장염을 피할 수 있는 ‘안전 음주량’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어렵다.
담석성 췌장염은 원인이 된 담석을 그대로 두면 재발할 수 있다. 미국소화기학회는 경증 담석성 급성 췌장염 환자의 경우 상태가 허락하면 퇴원 전에 담낭절제술을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수술 여부와 시점은 췌장염의 중증도와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고중성지방혈증도 급성 췌장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담석이 없고 뚜렷한 음주력도 없다면 혈중 중성지방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중성지방이 1000㎎/dL를 넘으면 고중성지방혈증을 원인으로 의심할 수 있다.
야식 뒤 찾아온 복통을 단순한 과식이나 체기로 넘겨서는 안 된다. 명치를 파고드는 통증이 등까지 번지고 구토마저 이어진다면 소화제로 버틸 때가 아니라 병원을 찾아야 할 때다.
급성 췌장염은 얼마나 많이 먹었느냐보다 위험 신호를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느냐가 중요하다. 한밤의 체기로 여긴 통증이 응급질환의 경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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