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K컬처의 역할에 대한 다른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던 찰나, BTS 멤버들 7명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각각 동일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저희는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함께해 주시는 아미와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발단은 한 달 전쯤 그래미가 신설을 발표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이었다. 얼핏 보면 아시아 대중음악의 위상을 인정해서 새로운 부문을 신설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이는 지역과 언어를 기반으로 음악을 구분하겠다는 인종주의의 다른 표현이었다. 새 부문 신설과 동시에 언어를 자격 기준으로 못 박은 것은 그래미가 늘 해왔던 배제와 격리였다.
이번 보이콧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BTS는 항의 성명 대신 참여를 거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도 ‘아리랑’ 월드투어로 미국과 유럽에서만 1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공연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현재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가 내린 결정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BTS를 필요로 하는 쪽은 그래미다. 그런 BTS가 먼저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그래미가 오랫동안 쌓아온 ‘초대하는 자’로서의 권위가 이미 역전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역과 언어로 음악을 구분 짓고 아시아 출신 가수를 별도 트랙에 밀어넣는 방식은 인정처럼 포장된 배제다. 영국 밴드가 영어로 노래한다고 ‘앵글로색슨 팝’ 부문으로 따로 가두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그 의미는 분명하다. 주류 팝 아티스트들과 아시아 아티스트를 같은 무대에서 겨루게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래미의 이번 행태는 그동안 흑인 아티스트, 라틴 팝, 힙합 음악에 대한 유구한 배제와 차별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미가 인종주의적 게토화를 스스로 공표한 이상, 쇠락해 가고 있던 그래미의 권위와 정당성은 이번 결정으로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아리랑’ 투어가 보여주듯 그래미라는 인증과 무관하게 성립하는 흥행과 영향력의 경로는 이미 증명되고도 남았다. 앞으로 다른 아시아 아티스트들도 유사한 부문 참여를 두고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고, 그래미를 필요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중음악 시장의 무게중심은 이미 상을 주는 쪽에서 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쪽으로 넘어갔다. 그래미만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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