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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안 시키길 잘했네…우승 없이 '310억' 번 탁구 전설 아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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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기자 rewonv@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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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자오즈민의 아들, 골퍼 안병훈
PGA 229경기, 단 한 번의 우승 없이

1988년 서울. 냉전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한국과 중국은 국교조차 없었다. 언어도 국적도 이념도 달랐던 두 탁구 영웅이 제3국을 거쳐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재형과 자오즈민. ‘세기의 로맨스’로 불린 두 사람은 1989년 10월 스웨덴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했다. 두 달 뒤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수천 명의 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통 혼례를 올렸다. 한·중 탁구인의 첫 결혼이었다.

 

그리고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중국인. 탁구 영웅 부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이었다.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젊은 시절. 연합뉴스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젊은 시절. 연합뉴스

하지만 서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낸 두 영웅은, 정작 아들의 손에 탁구채를 쥐여주지 않았다.

 

안재형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탁구가 얼마나 고된 종목인지, 세계 최강 중국의 벽을 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제가 했던 종목이라 오히려 더 겁이 났어요. 한국에서 자란 아이가 과연 중국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싶었죠.”

 

부부는 다른 길을 찾았다. 골프였다. 여섯 살,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에 간 아들은 클럽을 잡자마자 빠져들었다.

 

안재형(왼쪽)과 안병훈 부자. 뉴시스
안재형(왼쪽)과 안병훈 부자. 뉴시스

 

세상은 오랫동안 그를 ‘안재형과 자오즈민의 아들’로 기억했다.

 

골퍼, 안병훈의 이야기다.

 

세계 골프계의 주목을 받던 안병훈. 뉴시스
세계 골프계의 주목을 받던 안병훈. 뉴시스

 

열일곱, 세계를 놀라게 하다

 

2009년 열일곱의 안병훈이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정상에 섰다.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었다. ‘골프 천재’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었다.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 정상은 손만 뻗으면 닿을 듯했다.

 

2015년에는 유러피언 투어 최고 권위의 BMW PGA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21언더파, 대회 최소타 기록이었다. US 아마추어와 BMW PGA를 모두 제패한 건 전설 아널드 파머 이후 두 번째였다. 그해 안병훈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유러피언 투어 신인상을 안았다. 왕좌는 온전히 그의 몫인 듯했다.

 

정상은 늘 한 끗 차

 

그러나 꿈에 그리던 PGA 투어의 문을 연 순간부터 정상은 지독하리만큼 한 끗 차로 그의 손끝을 비껴갔다.

 

준우승만 다섯 번. 그중 2016년 취리히 클래식, 2018년 메모리얼 토너먼트, 2024년 소니 오픈은 세 번 모두 연장 승부 끝에 무릎을 꿇었다. 톱10에는 서른 번 이름을 올렸다.

 

아홉 시즌, 229개 대회 출전. 우승은 0회였다.

 

그럼에도 그는 PGA 투어에서 우승 없는 선수 가운데 한동안 가장 많은 상금을 쌓았다. 누적 상금 2153만달러(약 310억원). 데니 매카시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트로피 없이 이 부문 1위를 지켜온 선수였다.

 

PGA 투어에서 상금은 철저히 성적순으로 나뉜다. 우승 없이 이만한 돈을 벌었다는 건, 수년간 세계 최고들 사이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지켜왔다는 뜻이다.

 

정상 바로 아래, 가장 아찔한 절벽 끝. 그는 그 자리를 누구보다 오래 지켜냈다.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 직후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어머니 자오즈민의 품이었다. 연합뉴스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 직후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어머니 자오즈민의 품이었다. 연합뉴스

 

고국에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다

 

그런 그에게도 잊지 못할 하루가 있었다. 2024년 10월, 인천 송도.

 

DP 월드투어와 KPGA가 공동 주관한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안병훈은 김주형과 맞붙었다. 정규 마지막 18번 홀, 그의 버디 퍼트가 컵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연장이 성사됐다. 그리고 1차 연장, 다시 버디로 승부를 끝냈다. 고국 무대 우승은 9년 만이었다.

 

우승 후 어머니 자오즈민을 부둥켜안았다. 두 사람은 함께 울었다. 어린 시절 그를 돌봐준 할머니도 곁을 지켰다.

 

“이렇게 좋을 줄 몰랐습니다.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가 지켜보는 한국에서 우승해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1988년 서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부모 앞에 섰다.

 

1등이 아니어도 서사는 쓰인다

 

승자독식의 스포츠 판은 1등의 환호만 기억한다. 2등의 이름은 금세 잊힌다. 트로피가 없는 선수는 ‘비운’이나 ‘실패’라는 단어로 손쉽게 규정된다.

 

안병훈은 PGA 투어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골퍼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버텼다. 같은 뙤약볕 아래, 같은 바람을 맞으며 공을 쳤다. 정상에 서는 것과 정상 바로 아래를 오랫동안 지켜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안병훈은 아직 서른네 살이다. 올해 새로운 무대인 LIV 골프로 옮겨 다시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영국 대회에서는 한 타 차로 톱10을 놓치며 최종 11위에 올랐다. 정상은 여전히 한 발짝 앞에 있다.

 

1988년 한·중 ‘세기의 사랑’의 아들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누군가의 아들’이 아닌 골퍼 안병훈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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