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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코수르 두 거인의 격돌…브라질·아르헨 외교전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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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욱 기자 tae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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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아르헨 대사 초치·자국 대사 소환…아르헨 “공식 사과 없다”
친트럼프 우파 연대 강화 속 밀레이·룰라 충돌 격화…10월 4일 대선
브라질·아르헨티나 갈등 격화 속 李대통령 ‘균형외교’ 주목

이재명 대통령이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 등 남미 핵심 3국 순방에 나선 가운데, 메르코수르(MERCOSUR·남미공동시장)를 이끄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외교 갈등에 휩싸였다. 양국 갈등이 장기화해 메르코수르 내부 공조에 영향을 미칠 경우, 우리 정부가 재추진하는 한·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과 진보 성향의 악셀 키실로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악셀 키실로프 엑스(X)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과 진보 성향의 악셀 키실로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악셀 키실로프 엑스(X)

◆“룰라는 도둑” VS “전례없는 모욕”

 

발단은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대선 후보 출정식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향해 “도둑”, “죄수” 등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공개 비난했다.

 

오는 10월 대선을 앞둔 브라질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룰라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장남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는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자유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는 자리였다.

 

브라질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아르헨티나 주재 자국 대사를 협의를 위해 본국으로 소환하고, 브라질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밀레이 대통령의 발언 경위를 설명하도록 했다. 브라질 외교부는 “외국 정상이 브라질 영토에서 국가원수와 민주주의 제도, 사법부, 브라질 국민을 향해 이처럼 공격과 모욕을 가한 전례는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공식 사과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아르헨티나 일간 라나시온에 따르면 다니엘 라이몬디 주브라질 아르헨티나 대사는 브라질 외교부에 출석해 밀레이 대통령이 룰라 대통령을 향해 사용한 표현에 관해 설명할 예정이지만, 대통령 발언에 대한 공식 사과는 하지 않을 방침이다.

 

아르헨티나 정부 고위 관계자는 라나시온에 “사과는 없을 것”이라며 밀레이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 사이의 오랜 갈등, 밀레이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일가의 긴밀한 관계를 배경으로 꼽았다.

7월 25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자유당(PL)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공식 확정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오른쪽)이 정부 지출과 규제 축소를 상징하는 대형 가위를 들고 있는 가운데,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7월 25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자유당(PL)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공식 확정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오른쪽)이 정부 지출과 규제 축소를 상징하는 대형 가위를 들고 있는 가운데,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르헨 내부서도 자국 대통령 겨냥 “국익 해친다” 

 

이번 갈등은 아르헨티나 국내 정치로도 번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권을 이루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정부는 공개적으로 밀레이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 가브리엘 카토포디스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인프라·공공서비스부 장관은 엑스(X)를 통해 “밀레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대통령”이라며 “브라질은 우리 주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고 산업 생산의 80%가 브라질로 수출된다. 이웃 나라에 가서 그 나라와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악셀 키실로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도 밀레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키실로프 주지사는 26일 “밀레이 대통령은 브라질 정부와 룰라 대통령, 브라질 국민 전체를 모욕했다”며 “브라질 외교장관에게 직접 연락해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브라질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라며 “밀레이는 투자와 수출, 수천 개의 일자리,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국익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교가에서는 밀레이 대통령이 진보 성향 정상들과의 충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남미 우파 정상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가운데, 밀레이 대통령 역시 보우소나루 진영 등 역내 우파 세력과의 공조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브라질 이전에도 여러 진보 성향 정상들과 외교적 충돌을 이어왔다. 밀레이 대통령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멕시코 대통령을 “무지한 사람”이라고 비난했고,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은 이에 맞서 밀레이를 “파시스트”라고 불렀다. 2024년 10월 취임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과의 관계도 여전히 냉랭하다.

 

밀레이 대통령은 2023년 12월 취임 이후 줄곧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중남미 우파 진영과의 연대를 강화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에 호응하듯 지난해 외환·금융시장 불안을 겪던 아르헨티나에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제공하고 페소화를 매입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밀레이 대통령의 강도 높은 긴축 정책에도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자, 미국이 전략적 우방인 아르헨티나를 지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모두 경제적·외교적 실익을 고려할 때 갈등이 외교 단절 수준으로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10월4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판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집권 노동자당(PT) 역시 수사적 대응을 넘어 갈등을 장기화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이번 사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상 간 갈등이 양국 관계를 넘어 아르헨티나 국내 정치와 브라질 대선 국면까지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메르코수르의 양축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대립이 장기화할 경우 한·메르코수르 FTA 재추진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잇달아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양국 사이에서 균형 있는 외교 메시지를 유지하며 협력 기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이번 순방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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