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부담 못해 부모님집 유턴도
1∼5월 수도권서 3489호 착공 그쳐
2026년 목표 6만2000호에 한참 밑돌아
보상·이주·인허가 등 차질 땐 ‘표류’
“장밋빛 물량 아닌 적기 실행 중점을”
“당첨만 되면 딸에게 자기 방을 만들어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경기 성남 복정2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 당첨자인 40대 중반의 김유영씨는 2021년 당첨 소식을 듣자마자 살고 있는 전셋집을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비록 평수는 작았지만 작은 방처럼 활용할 수 있는 ‘알파룸’을 갖춘 구조였다. 김씨 가족에게는 그 집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입주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2023년 5월로 예정됐던 본청약은 두 차례 연기된 끝에 올해 7월31일로, 2025년 말 예정이던 입주는 2030년 2월로 5년이나 각각 미뤄졌다. 사전청약 당첨 자격을 유지하려면 본청약 때까지는 ‘무주택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성남 전셋집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사는 경기 가평으로 거처를 옮긴 지 2년이 돼 간다.
김씨가 당첨된 복정2 신혼희망타운은 문재인정부가 3기 신도시 공급 확대를 위해 도입한 사전청약 사업 중 하나다. 그러나 사업이 잇따라 지연되면서 당첨자들은 본청약과 입주까지 수년을 기다려야 했다. 고양 창릉 S4블록 사전청약 당첨자인 류은창(39)씨도 “(입주가 지연된) 4년 동안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족쇄를 찬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사전청약은 결국 2024년 신규 모집이 중단됐지만, 당첨자들의 기다림은 계속되고 있다.
◆공급 확대의 약속, 길어진 기다림
부동산 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역대 정부는 공공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며 주거 안정을 꾀했다. 문재인정부는 사전청약제도를 도입해 3기 신도시 등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추진했고, 윤석열정부는 ‘뉴:홈’을 내세워 공공분양을 확대했다. 이재명정부도 취임 초부터 ‘공적주택 110만가구 공급과 2030년 장기 공공임대주택 비율 10% 달성’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공공주택 확충에 나섰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무주택 서민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청사진이다. 하지만 정부의 장밋빛 공급 계획과 달리 제때 삽을 뜨지 못한 채 사업이 표류하고 있는 곳이 잇따르면서 수많은 서민이 주거 불안 장기화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주거정책 전문가는 27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주택 유형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기존 사업이 변경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며 “이 때문에 수요자들이 정책의 지속성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전청약 당첨자인 신지은(42)씨도 본청약이 두 차례 연기되자 전셋값 부담을 견디지 못해 2년 전 국민임대로 이사 왔다. 신씨는 “경기에 있는 국민임대는 다 넣었다”며 “청약 당첨됐을 때보다 더 기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거주 중인 국민임대 계약은 2030년 1월 끝난다. 복정2 입주 예정은 같은 해 2월이지만, 사업 일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계획대로 입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보상·인허가… 공급 지연의 현실
3기 신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공공택지 사업은 계획 발표부터 실제 입주까지 통상 8∼10년 걸린다. 토지 보상과 주민 이주, 지구계획 승인, 각종 인허가, 기반시설 조성 등 여러 절차가 맞물려, 어느 한 단계에서 차질이 생기면 이후 일정도 연쇄적으로 미뤄진다. 성남중원 공공주택사업은 지역 민원과 지방자치단체 요청 등으로 준공 시기가 당초 2024년 말에서 2030년 10월로 연기됐다. 일부 3기 신도시는 군부대 이전과 문화재 조사, 공사비 상승까지 겹치면서 본청약과 입주 일정이 수년씩 밀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성남 복정2 신혼희망타운도 시유지 보상 협의 지연과 기존 주민 민원에 따른 설계 변경, 암반 발파 안전대책 수립 등이 겹쳐 당초 계획보다 사업이 장기간 늦어진 것”이라고 했다.
세계일보가 국가통계포털(KOSIS)의 주택건설 착공실적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도권 공공주택 착공은 3489호에 머물렀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수도권 공공주택 착공 목표로 제시한 6만2000호에 한참 못 미친다. 남은 기간 착공 속도를 크게 끌어올린다고 해도 목표 달성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LH의 착공 계획 대비 실적도 들쑥날쑥하다. 2021년 38.3%, 2022년 44.1%, 2023년 50.9%로 3년 연속 저조하더니 2024년에 100%를 달성하고, 지난해에는 다시 84.3%로 낮아졌다. LH 관계자는 “착공실적은 연도별 목표 물량뿐 아니라 인허가, 지방자치단체 협의, 관계기관의 보완 요구 등 사업별 여건의 영향을 받는다”며 “2024년에는 관련 절차가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됐지만 지난해에는 그렇지 못한 사업들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단순히 사업별 여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LH가 2021년 임직원 투기 사태 이후 조직 쇄신과 인력 이탈, 조직개편 논의 등이 이어지면서 사업 추진 역량이 예전만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공주택 정책의 성패는 공급 목표를 얼마나 발표했느냐가 아니라 실제 공급을 얼마나 계획대로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공공주택 정책은 사업을 얼마나 차질 없이 추진하느냐가 중요한 만큼 3기 신도시 등 우선 추진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며 “아울러 과거 정부에서 인허가를 받았지만 착공하지 못한 물량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일정과 재원 계획을 제시해 ‘공급이 적기에 실현될 수 있다’는 신뢰를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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