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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당나귀 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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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당나귀가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님! 너무 추우니 꼬리만 방안에 넣게 해주십시오.” 주인은 측은한 마음에 허락했다. 잠시 후 당나귀는 다시 “꼬리만 넣으니 그래도 춥습니다. 뒷다리만 조금 넣게 해주십시오.” 하여 주인은 또 허락했다. 그러다 당나귀는 배를 들이밀고 앞다리를 들이밀어 마침내 머리까지 방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방안은 당나귀가 차지했고 정작 주인은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를 두고 흔히 당나귀 심보라고 한다. 처음의 명분은 작고 선해 보일지라도, 절제와 경계하는 마음이 약해지면 어느 순간 본질은 사라지고 주인과 종의 위치가 바뀔 수 있다는 교훈이다.

박훈상 전 여수해양경찰서장
박훈상 전 여수해양경찰서장

지방의회는 1952년 출범하여 1961년 중단되었다가 1991년 30년 만에 부활하였다. 당시 여론은,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개선하고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방자치의 실현이 국가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초기 지방의회의 봉사와 헌신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의정 활동비와 월정 수당은 좀이 벽을 파듯 조금씩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정책지원관과 전문위원 등 보좌 인력도 확대되었다. 그런 와중에 일부 구의원들에게 특권 의식, 위신 실추, 편 가르기, 불필요한 갈등 조장, 지역 현안 외면 등의 모습이 나타나 주민들의 실망을 키우고 있다.

특히, 지방의원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이해 충돌 논란이다. 주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권한이 개인의 직업이나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의정 활동 과정에서 형성된 영향력과 인맥이 사적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방의원의 역할은 행정 감시 및 세금을 절감하고 주민의 입장에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지, 특권을 누리며 자기 사업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일부 지방의원들은 당나귀 우화의 씁쓸한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단순한 비용 논리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방의원들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지방의회 운영에 투입되는 비용만큼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지방의원 급여와 각종 수당, 의회 운영비, 정책지원과 인건비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이 예산을 절감하고 행정 개선 효과를 만들어 낸 것과 비교하여 더 우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예산을 감시하고 낭비를 줄이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을 소비하는 구조가 된 것은 아닌지? 등의 자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처음에는 주민을 위해 만든 제도였지만 점차 조직과 권한은 커지고 비용은 늘어나는데, 정작 주민은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나귀가 방을 차지하는 순간 결국 주인이 밀려났다는 우화처럼, 개인의 이해관계가 우선하고 주민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순간 지방의회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3800여명의 전국 지방의원들은 초기 의회가 지녔던 봉사와 헌신의 정신,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 주민 위에 군림하는 의원이 아니라 주민을 섬기는 봉사자로서 초지일관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하고, 명예보다 봉사를, 자신보다는 주민의 삶을 우선하는 의정 활동을 펼치길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주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박훈상 전 여수해양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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