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설가 위화(余華·66)는 한국인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의 장편 ‘허삼관 매혈기’는 가족 생계를 위해 자신의 피를 팔기로 작정한 주인공 허삼관의 이야기다. 의사와 만난 허삼관은 “피를 더 많이, 더 자주 뽑아 달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피를 뽑은 날이면 혈액 보충을 위해 식당에 가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시켜 먹었다. 한국도 과거 시골에서 상경해 어렵게 공부하는 고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를 뽑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헌혈이 자리를 잡으며 매혈은 종적을 감췄다.
요즘 사람들은 예전만큼 헌혈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다. 국민 가운데 헌혈 경험이 한번도 없는 이가 부지기수다. 2025년 국내 헌혈자 수는 125만1288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병원들마다 수술 등에 쓰이는 혈액 부족을 호소한다. 어느 병원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보호자에게 “직접 혈액을 구해와야 한다”고 안내하기도 한다. 이러다가 전쟁이라도 터지면 갑자기 늘어나는 부상병 등 응급 외상 환자들을 우리 의료 체계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24일 대한적십자사 서울동부혈액원에 따르면 주민 문정애(68)씨가 최근 헌혈의집 수유센터에서 400회 헌혈에 참여했다. 문씨는 30세 무렵 성북구 석계역 근처에 헌혈센터가 있는 것을 보고 태어나 처음으로 헌혈을 했다. 이후 살림과 육아 등으로 바쁘게 살면서 한동안 헌혈을 할 엄두를 못 냈다. 그러다가 강북구 수유동으로 이사한 뒤 우연히 동네에 있는 헌혈의집 수유센터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헌혈을 재개했고 마침내 누적 400회 기록을 세우게 됐다. 문씨의 생명 나눔 실천에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런데 현재 68세인 문씨는 ‘헌혈 정년’ 도달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헌혈에도 정년이 있나” 하고 궁금하게 여길 이가 많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헌혈은 69세 이하까지만 할 수 있고, 70세가 넘으면 불가능하다. 문씨는 “남은 시간 동안 건강 관리를 잘해서 누군가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끝까지 헌혈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만성적인 혈액 부족에 대응하고자 헌혈이 가능한 연령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미국은 헌혈할 수 있는 나이에 제한이 없고, 호주의 경우 75세 이하까지 헌혈이 가능하다고 한다.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7080 어르신들에게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듯해 참으로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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