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또는 다수의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관을 모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군형법상 상관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상관을 모욕했더라도 문서나 그림, 형상을 공개적으로 게시하거나 연설하는 것처럼 ‘모욕의 방법’이 공개적인 경우에만 상관모욕죄가 성립된다며 처벌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2일 해군 함정 전탐장(상사) A씨의 상관모욕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고등군사법원의 원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이송했다.
A씨는 2019년 10월 기지로 입항하던 함정 내 조타실에서 상관인 대위 B씨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여기 지휘관 엉망이다. 권고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며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어 책상에 던진 행위로 군검찰에 기소됐다. 당시 하사 등 3명이 A씨의 발언을 듣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군형법 64조 2항 상관모욕죄는 ‘문서, 도화(圖畵), 또는 우상(偶像)을 공개적으로 게시하거나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그 밖의 공연한 방법’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사건의 쟁점이 됐다.
앞서 1999년 12월 대법원은 ‘그 밖의 공연한 방법’에 대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관을 모욕한 정도로 충분하다”는 판결을 내놓았고, 그동안 법원에선 이러한 취지의 판례가 유지돼 왔다.
하지만 이날 전원합의체는 단순히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 즉 ‘공연성’이 갖춰진 상태에서 상관을 모욕했다고 해서 상관모욕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며 27년 만에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7인은 군형법상 상관모욕죄의 ‘공연한 방법’은 모욕의 수단과 방식이 공연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므로, 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연히’와는 구별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공연한 방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한 종전 판례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다만 별개 의견을 낸 천대엽·오석준·엄상필·신숙희·박영재 대법관은 처벌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다수의견의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처벌 범위 제한과 관련해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욕 행위는 말, 글, 그림, 거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양상이 끊임없이 달라진다”며 “공연한 방법을 제한해 해석하는 다수의견은 60여년 전 군형법 제정 당시 문언에 얽매여 시대상황 변화와 발전을 뒤따르지 못한 채 오히려 정보화 추세에 역행하는 해석”이라고 짚었다.
예를 들어 부하인 군인이 업무 중 다수의 군인들이 듣고 있는 가운데 여성 상관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음란하게 표현한 경우 등에도 공연한 방법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형법을 적용할 수 없게 된다면 군형법이 추구하는 입법취지의 달성이 어렵게 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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