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비와 30도 안팎의 폭염이 번갈아 찾아오는 올여름, 내리는 비로 인해 기온이 다소 내려가도 안심할 수 없다. 습도가 오르면 땀이 잘 증발하지 못해 체온 조절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 Korea)는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여름철 습한 폭염에 대처할 방법’ 보고서를 발표했다.
◆ 불볕더위 아닌 무더위가 더 위험한 이유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이 같더라도 습한 더위가 건조한 더위보다 인체에 훨씬 치명적이다. 땀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빼앗아 가야 하지만 습도가 높으면 이 과정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온이 같더라도 습한 더위가 건조한 더위보다 훨씬 위험하다”며 “습도가 높으면 땀이 공기 중으로 잘 증발하지 못해 체온을 낮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기온만 높은 불볕더위와 습도까지 높은 무더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짚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기준 습도인 55%에서 10%포인트 오를 때마다 인체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약 1도씩 높아진다.
따라서 상대습도가 90%에 이르면 같은 기온이라도 체감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진다.
실제 상대습도가 높았던 1994년 여름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극심한 폭염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온열질환으로 92명이 숨지며 평년보다 4배 넘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습도가 체온 조절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에어컨 가동 여부가 결정하는 계층 간 건강 격차
비와 폭염이 교차하는 날씨는 계층 간 건강 격차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올여름은 비와 폭염이 번갈아 나타난다”며 “문제는 이 부담이 고르게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습도가 높으면 선풍기의 냉각효과가 떨어지므로, 습한 폭염에서는 에어컨을 켤 수 있는지가 곧 건강 격차가 된다”고 지적했다.
냉방 설비가 부족한 요양시설일수록 폭염 때 사망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쪽방과 고시원은 전력 용량과 건물 구조 탓에 에어컨 설치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름철 냉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지원액 역시 실제 24시간 냉방 비용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고서는 “단순한 냉방기 보급 대수가 아니라 실제 에어컨 가동 여부를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 체감온도 한계치 가늠하는 습구온도의 중요성
보고서는 단순한 기온 수치뿐만 아니라 습구온도를 함께 살펴야 온열질환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구자호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같은 기온이라도 습도가 높으면 땀이 잘 증발하지 않아 체온 조절이 어려워지고 열사병 등 중증 질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기온뿐 아니라 습구온도(wet-bulb temperature)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습구온도는 기온과 습도를 함께 반영해 인체가 실제로 느끼는 열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지표다.
통상 습구온도가 35도를 넘으면 땀을 통한 인체의 자연적인 체온 조절 기능이 완전히 한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도시 구조를 바꾸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도시 숲과 하천 조성이 폭염 완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 구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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