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분 코너킥 변칙 패스로 동점 유도
추가 시간 오른발 크로스, 역전골 AS
집중 견제에도 드리블 9회 성공 ‘건재’
‘8골 4도움’ 음바페 제치고 득점왕 선두
1958·62년 브라질 이후 첫 연승 도전
어느덧 서른아홉. 제 아무리 젊은 시절 전 세계를 평정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체력과 신체 능력이 크게 줄어들거나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아도 무방한 나이가 됐다. 실제로도 그렇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훨씬 느려졌고, 전체 이동 거리의 절반을 걸어 다니는 등 활동량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다가도 공격 작업이 시작되면 그의 눈빛은 달라진다. 범인들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시야로 그라운드 위 모든 시공간을 꿰뚫고 골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 직접 넣거나 혹은 동료에게 연결해 주거나.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그라운드 장악력을 자랑하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가 7분 만에 도움 2개를 올리는 ‘마법’으로 조국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2연속 결승 무대로 인도했다.
아르헨티나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후반 40분에 나온 엔소 페르난데스(첼시)의 동점 골과 추가시간에 터진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인터 밀란)의 역전 골을 엮어 2-1로 이겼다. 2022 카타르에서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이날 승리로 1958·1962년 브라질 이후 최초로 월드컵 ‘리핏’ 달성에 한 걸음만 남겨뒀다.
이날 골을 터뜨린 건 페르난데스와 마르티네스였지만,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난 건 팀의 심장인 메시였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이날 노골적으로 메시를 거칠게 다뤘다. 공만 잡으면 여러 명이 달라붙는 건 기본이었고, 어떻게든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 애썼다. 전반 37분엔 역습 상황에서 드리블을 치려는 메시에게 4명이 잇따라 달려들었고, 결국 메시가 넘어졌다. 이에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한동안 경기가 멈출 정도였다.
아무리 견제해도 메시는 메시였다. 이날 메시는 54차례 패스를 뿌려 그중 43개(80%)를 동료에게 배달하며 득점 기회를 4개나 창출했다. 몸으로 부딪쳐 오는 집중 견제 속에서도 드리블을 11차례 시도해 그중 9번(82%) 성공했다. 득점 기회 창출과 드리블 성공 횟수 모두 양 팀을 통틀어 최다였다.
그러나 0의 균형을 먼저 깨뜨린 건 잉글랜드였다. 후반 10분, 모건 로저스(애스턴 빌라)가 오른쪽에서 올린 날카로운 땅볼 크로스를 상대 수비 뒷 공간에서 침투하던 앤서니 고든(뉴캐슬)이 어느새 문전 앞으로 쇄도해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며 아르헨티나 골망을 흔들었다.
선제골을 내준 아르헨티나는 만회하기 위해 파상공세를 이어갔지만 번번이 골 기회가 무산됐다. 후반 23분 니코 곤잘레스(맨체스터 시티)의 헤더가 잉글랜드 골키퍼 조던 픽포드(에버턴)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고, 후반 30분 알렉시스 맥알리스터(리버풀)의 강력한 헤더 슈팅은 골대를 강타하는 불운을 겪었다.
점점 패색이 짙어지던 상황에서 메시의 발끝이 찬란하게 빛났다. 후반 40분, 코너킥 키커로 나선 메시는 크로스 대신 짧은 패스를 동료에게 준 뒤 다시 이어받았다. 모두가 문전 앞으로 크로스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 순간, 메시는 페널티 박스 밖 잉글랜드 수비가 헐거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왼발로 아크 정면에 위치한 페르난데스에게 패스했고, 페르난데스가 마음 놓고 날린 오른발 중거리슛은 픽포드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1-1 동점.
기세가 오른 메시는 후반 추가시간에 승부를 끝냈다.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메시의 주발이 왼발인 것을 감안해 잉글랜드 수비는 왼쪽 수비에 무게를 뒀다. 이를 캐치한 메시는 엔드라인으로 더 치고 들어가 오른발로 정확한 ‘택배 크로스’를 올렸고, 공은 잉글랜드 센터백 존 스톤스의 머리를 살짝 지나 마르티네스의 이마에 정확히 맞고 잉글랜드 골망을 흔들었다.
7분 사이에 왼발, 오른발로 도움 2개를 기록한 메시는 이번 대회 기록을 8골 4도움으로 늘리며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8골 3도움)를 제치고 공격 포인트 부문 선두로 올라섰다. 아울러 득점 부문에서도 메시의 이름이 제일 위로 올라갔다. 월드컵에서는 득점이 동률일 경우 도움 숫자로 순위를 결정한다. 월드컵 통산 21골 12도움을 기록 중인 메시는 골과 도움 부문 모두 역대 1위에 올라 있다. 카타르 대회부터 이어온 월드컵 최다 연속 공격포인트 기록은 11경기로 연장했다.
메시는 4년 전 카타르에서 자신의 커리어 유일의 오점이었던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자타공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 등극했다. 2022 카타르가 메시의 ‘라스트 댄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축구의 신답게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메시는 4년 뒤에도 여전히 최정점에 올라서 있다. 우리는 여전히 ‘메시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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