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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이매진] 빗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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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봐서는 큰 움직임 없이 앉아 있기만 해서 어디서나 작업이 가능해 보일 수 있는 직업인 작가의 일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요즘 같은 더위에는 시원한 카페도 도서관도 늘 이용객이 많아 일할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취재를 해야 할 경우는 더운 여름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서 일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폭염 살인’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책의 원제는 ‘폭염이 먼저 당신을 죽일 것이다’이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수록 올해가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계속된다. 기온이 높아도 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 에어컨 없이도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던 유럽도 에어컨을 찾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프 구델이 에어컨이 구비되지 않아 폭염에 곤란을 겪을 도시로 파리를 언급했는데 그 예측이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에어컨을 많이 틀려면 전기가 더 많이 필요하고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게 된다. 나는 시원하지만 더운 열기를 내 집 바깥 골목으로 내보내는 건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일이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에어컨 없이 살 수 없어져서 에어컨의 부정적인 측면을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결국 누군가는 폭염 피해를 온몸에 입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지는데, 이런 마음에 함정이 있는 건 아닐까.

제프 구델은 이 책에서 향후의 폭염 상황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임계점을 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대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예전에 자신들만의 지하 벙커를 만들고 그 안에서 티브이를 시청하는 호주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인간이 폭염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태풍 바비가 지나간 영향으로 강한 바람과 빗줄기가 도시를 흔들던 화요일 밤, 친구와 헤어진 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중 우산이 뒤집혀버렸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시원했달까, 지난 낮시간의 더위를 흔드는 바람과 빗줄기가 시원해 해방감을 느꼈다. 망가진 우산을 들고 한참을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빗줄기가 멈췄고 그제야 온몸이 다 젖은 상태로 버스를 타도 되는지 고민했다. 태풍이라도 있어 시원한 밤이었다.

어떡하든 폭염에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안전하고 시원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또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상황이지만, 온도에 예민한 약하디약한 인간들은 폭염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그럼에도 다가올 8월이 두렵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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