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자본·부패 ‘은밀한 결탁’
평화 내세워 전쟁… 방산업 팽창
정권 바뀌어도 시스템은 그대로
트럼프, 실리콘밸리 인맥 활용
AI·빅테크 새 권력축으로 부상
워싱턴은 불타고 있다/ 앤드루 콕번/ 전주범 옮김/ 한울/ 2만9800원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세계 권력의 중심이다. 백악관과 의회, 국방부,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연방대법원이 한 도시에 모여 있고, 이곳에서 내려지는 결정은 세계 경제와 안보, 국제질서를 흔든다. 세계는 오랫동안 워싱턴을 세계 정치와 안보의 심장부로 여겨 왔다. 그러나 탐사보도 전문기자 앤드루 콕번은 ‘워싱턴은 불타고 있다’에서 이러한 신화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환상 뒤에 가려진 워싱턴의 정치와 자본의 부패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눈에 비친 워싱턴은 치밀하게 설계된 권력의 본부가 아니라 탐욕과 로비, 관료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뒤얽혀 스스로를 태우고 있는 거대한 용광로다. 제목의 ‘불타고 있다’는 표현은 내부의 탐욕과 무능, 구조적 부패가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다는 은유다.
미국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17일 퇴임 연설에서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한다. 잘못된 권력이 커질 가능성은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과 방위산업, 정치권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우려한 것이다. 국방부는 더 많은 예산을 원하고, 방산기업은 더 많은 무기를 판매하려 하며, 정치인은 일자리와 정치자금을 확보한다. 여기에 싱크탱크와 로비스트, 안보 전문가들이 가세하면서 안보는 국가를 지키는 수단을 넘어 거대한 산업으로 변한다.
저자는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이러한 구조가 낳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제시한다. 특히 이라크전은 존재하지 않았던 대량살상무기(WMD)를 명분으로 시작됐고, 정보기관은 정치권이 원하는 정보를 생산하거나 과장했으며 상당수 언론도 이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막대한 전쟁 비용과 국제적 신뢰를 잃었지만, 정책을 설계한 조직은 그대로 남았다. 실패가 반복돼도 시스템은 유지된다는 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이다.
저자는 민주당과 공화당, 특정 대통령을 가리지 않고 워싱턴 정치권의 탐욕을 정조준한다. 클린턴 행정부는 냉전 종식 이후 ‘평화의 배당금(Peace Dividend)’을 약속했다. 소련 붕괴로 초강대국 간 군사 대결이 끝난 만큼 국방비를 줄여 경제와 복지, 정보기술 산업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금융 규제 완화 속에서 월가와 대기업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욱 확대됐다. 민주당 정부였지만 자본의 이해관계는 정책 결정 과정 깊숙이 자리 잡았다.
부시 행정부는 군산복합체의 힘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시기였다. 9·11 테러 이후 안보는 절대 가치가 되었고, 이라크전은 잘못된 정보와 정치적 판단이 결합한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전쟁은 실패했지만, 방산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했고, 미국 방위산업체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수주를 기록했다. 저자는 특히 집속탄 지원 사례를 통해 국제정치에서는 원칙보다 전략이 우선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러시아의 집속탄 사용은 전쟁범죄라고 강하게 규탄하면서도, 미국은 같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이는 안보와 국익이라는 명분이 인도주의와 국제규범이라는 도덕적 기준을 압도하는 국제정치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기술 재벌들이 트럼프 정권에 미치는 영향력의 추가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며 JD 밴스 부통령과 피터 틸, 데이비드 색스 등 실리콘밸리 인맥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밴스는 틸의 후원을 바탕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졌고, 색스는 백악관의 인공지능(AI) 및 암호화폐 정책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또한 저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팔란티어 등 주요 기술기업들이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기술을 제공하면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트럼프 개인보다 그를 둘러싼 새로운 권력 연합에 주목한다. 군산복합체에 이어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술기업들이 새로운 권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규제 완화와 데이터센터 확대, 원자력과 화석연료 규제 완화, 정부 전반의 AI 도입은 미국의 기술 패권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거대 기술기업들이 막대한 정책적 혜택을 누리는 구조도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틸과 밴스, 색스 등으로 이어지는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와 국방 계약 확대 사례를 제시하며 군산복합체에 이어 ‘AI·기술복합체’가 미국 권력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한다.
책은 미국 정치만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권력은 언제나 스스로를 확대하려 하고, 안보와 기술은 그 권력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탐욕과 구조적 부패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향찰(鄕察) 유착](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16/128/20260716524187.jpg
)
![[기자가만난세상] 북한배경학생 품을 준비가 우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85.jpg
)
![[삶과문화] 축구로 누비고, 음악으로 나누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364.jpg
)
![칠레 정부를 돌려세운 ‘아미의 힘’ [이지영의 K컬처 여행]](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02/128/20260702515006.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