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유엔군 용사들이 묻힌 부산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는 첫 화면부터 독특하다. 한국어 외에 영어·프랑스어·튀르키예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유엔 공용어이니 그렇다 쳐도 튀르키예어는 솔직히 의외다. 아무리 한국과 튀르키예가 ‘형제의 나라’라고 해도, 국내에서 튀르키예어가 영어·프랑스어와 동등한 대접을 받는 기관은 몇 안 될 것이다. 유엔기념공원은 왜 그토록 튀르키예를 후하게 예우하는 것일까.
유엔기념공원에 따르면 이곳에서 영면에 든 튀르키예 장병은 460여명에 이른다. 튀르키예 전체 전사자 1000여명의 약 절반이다. 튀르키예는 3년 넘는 6·25전쟁 기간 연인원 2만1000여명의 병력을 한반도에 보냈다.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쨰로 큰 규모다. 지난 2025년 8월 서울 동작구에 소재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튀르키예군 추정 유해 4위 인수식이 엄수됐다. 6·25전쟁 당시 전사한 것이 확실시되는 튀르키예군 장병 4명의 유해를 유엔군사령부가 국유단에 인계한 것이다. 본국인 튀르키예로 운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는 “전사자를 대우하는 튀르키예 정서는 한국, 미국 등과 다르다”며 “타국일지라도 전사한 곳에 묻히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국적으로 따져 유엔기념공원에 가장 많은 전사자가 안장된 나라는 영국이다. 6·25전쟁 기간 영국은 미국(약 179만명) 다음으로 많은 연인원 8만1000여명의 장병을 파병해 북한군 및 중공군에 맞서 싸우는 한국을 도왔다. 그리고 1200명 가까운 전사자의 4분의 3에 이르는 890여명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국 땅에 묻혔다. 정작 미군 전사자 중 한국에서 안식을 취하는 이들은 몇 안 된다. 이를 두고 “미국과 영국은 같은 영어권 국가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며 “미국은 고인이 영원히 가족 곁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반면 영국은 전통적으로 망자(亡者)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디에서 보냈는지가 중시되는 풍조”라고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14일 한국을 찾은 영국 앤(75) 공주가 첫 국내 일정으로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앤 공주는 찰스 3세(77) 국왕의 하나뿐인 여동생으로, 영국 왕실의 여성들 가운데 여왕(왕비)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프린세스 로열’(Princess Royal)의 작위를 갖고 있다. 한국 땅에 잠든 영국 장병들 무덤을 일일이 살펴본 앤 공주는 “전사자와 참전용사들이 크게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한 90대 한국인 노병(老兵)들과 만난 자리에선 “위대한 희생과 헌신에 깊이 감사한다”고 찬사를 바쳤다. 70여년 전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국을 위한 영국인들의 희생과 헌신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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