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항공유보다 에너지 3배 ↑
가장 유망한 친환경 연료로 주목
미국·유럽 소형기 시험비행 성공
韓, 핵심기술 의존 불가피하지만
액화수소운반선 시장 선점 가능
HD한국조선 등 설계 ‘개념승인’
추가 기술 검증·경제성 확보 관건
‘비행기가 항공유 대신 수소를 넣고 하늘을 나는 시대가 올까.’
아직 일부 실험용 소형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한 단계일 뿐이지만, 세계적인 항공기 제작사와 엔진업체들이 수소항공기 개발에 뛰어들면서 공상과학 영화 같던 구상이 조금씩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수소연료전지 항공기의 기반 기술을 연구하고 대한항공이 공항 내 수소 공급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첨단 수소항공기 개발을 주도하며 상용화에 앞장선 곳은 에어버스와 롤스로이스, 수소항공 스타트업 제로에비아 등 해외 기업이다.
현재와 같은 개발 구도가 이어진 채 수소항공기 양산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은 핵심 기술과 부품을 해외 기업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대형 액화수소 운반선 기술을 확보한 우리 조선업체들이 글로벌 수소 운송망 구축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소, 항공유 대체할 미래 연료
수소항공기 개발 시작은 6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전신인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는 1957년 B-57 폭격기의 엔진 한쪽을 액체수소로 가동하는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이 비행기는 기존 항공유로 이륙한 뒤 비행 중 한쪽 엔진의 연료를 수소로 바꿔 운항했다. 오늘날 하이브리드 차량처럼 두 가지 연료를 상황에 따라 활용한 셈으로, 수소로 항공기 엔진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입증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저장과 운송이 어렵고 값싼 항공유를 대신할 만큼 경제성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수십년간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수소항공기를 다시 주목한 것은 항공업계에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면서다. 비행기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3%를 차지한다.
자동차는 배터리를 이용하는 전기차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대형 여객기를 ‘전기 비행기’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더디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손상·과열·과충전 등으로 폭발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기차는 배터리에 불이 나면 차를 세우고 대피할 수 있지만, 비행 중에는 대처가 어렵다. 현재 배터리는 항공유보다 훨씬 무거워 ‘전기 비행기’는 충분한 승객을 태우고 장거리를 비행하기 어렵다. 화재를 막기 위한 냉각·안전장치까지 갖추면 기체 무게는 더욱 늘어난다.
항공업계가 주목한 것은 수소였다. 수소는 같은 무게의 항공유보다 3배가량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다. 가장 유망한 항공연료인 셈이다.
◆수소항공기 개발 경쟁… 유럽·미국 주도
기술 개발 경쟁을 주도하는 곳은 유럽과 미국의 항공기·엔진업체들이다. 유럽 최대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는 수소로 전기를 만들어 프로펠러를 돌리는 수소연료전지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다. 에어버스는 지난 7일 독일 엔진업체 MTU에어로엔진과 수소연료전지 추진장치의 개발·상용화를 전담할 합작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합작회사는 2027년 출범할 예정이다.
영국 엔진업체 롤스로이스와 저비용항공사 이지젯은 수소를 엔진에서 직접 태우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두 회사는 2022년 현대식 항공기 엔진을 수소만으로 가동하는 지상시험에 성공했고, 미국 나사 스테니스우주센터에 대형 엔진 시험시설을 마련했다. 지난 4월에는 수소만으로 실제 이륙에 필요한 수준까지 항공기 엔진 출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실제 비행 실증은 대형 여객기보다 소형·지역항공기 분야가 한 발 앞서 있다. 기체가 작을수록 필요한 추진 출력과 탑재해야 할 수소량이 적어 새로운 추진장치를 먼저 적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독일 수소항공 스타트업 H2FLY는 2023년 액체수소와 연료전지로 움직이는 4인승 항공기의 유인 비행에 성공했다. 네 차례 진행된 시험 중 한 번은 3시간 넘게 날았다. 기체수소 대신 액체수소를 사용하면서 예상 비행거리가 750㎞에서 1500㎞로 두 배 늘었다고 한다.
미국 스타트업 제로에비아도 2023년 19인승 지역항공기의 한쪽 엔진을 수소연료전지 추진장치로 바꿔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현재 미국과 영국 항공당국의 안전 인증 절차를 밟으며 10∼20인승 수소항공기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운송망엔 기회… ‘K조선’ 3사 기술 경쟁
이런 기술 개발 경쟁에서 한 발 뒤처진 한국에도 기회는 있다. 수소항공기 상용화가 본격화하면 항공기에 공급할 액화수소를 생산·저장·운송하는 새로운 공급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형 액화수소 운반선 기술을 개발해 온 국내 조선업계가 수소항공 시대의 숨은 수혜자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각각 8만㎥급 대형 액화수소 운반선 설계를 개발해 선급의 개념승인을 받았다. 개념승인은 실제 선박을 건조하기에 앞서 설계의 기술적 타당성과 안전성을 인정받는 절차다. HD한국조선해양은 호주 에너지기업 우드사이드와 현대글로비스, 일본 MOL 등과 액화수소 해상운송망을 연구하고 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도 운송 과정에서 액화수소가 기체로 증발하는 양을 줄이기 위한 화물창과 단열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축적한 극저온 화물창과 배관·단열기술은 국내 조선사들의 강점이다. 다만 액화수소는 영하 162도에서 운반하는 LNG보다 약 90도 낮은 영하 253도를 유지해야 한다. 아직 대형 액화수소 운반선의 상용화 사례가 없는 만큼 실제 수주까지는 추가적인 기술 검증과 경제성 확보가 필요하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풍부한 건조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암모니아, 수소와 같은 차세대 가스운반선 시장 역시 선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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