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광주 도심에서 17세 여고생을 살해한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이 성범죄를 노린 치밀한 계획범죄로 드러난 가운데, 초동 부실 수사·증거 인멸 의혹을 향한 수사가 당시 수사 지휘 라인까지 겨냥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14일 사건 발생 당시 광주 광산경찰서장이던 A 경무관과 형사과장 B 경정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앞서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수사팀장 C 경감까지 사건 처리를 지휘한 세 사람이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현직 경찰 간부인 피의자 아버지의 증거 인멸 정황과 맞물려 파장이 커지고 있다.
◆ 수사 지휘 라인까지 확대…전 광산서장·형사과장 입건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수사팀장이던 C 경감을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해 지난 8일 구속한 데 이어, 이날 당시 광산경찰서장이던 A 경무관과 형사과장 B 경정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사건 처리를 지휘한 세 사람이 모두 피의자로 전환된 것이다.
특별수사단은 C 경감에게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추가 적용했으며, 주요 수사 자료를 숨긴 데 대한 직무유기 혐의도 함께 적용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수사의 초점은 이들이 사건 처리 전반의 의사결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다. 특별수사단은 결박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케이블타이와 주요 부위가 훼손된 리얼돌의 존재를 알고도 확보하지 않고, 강간 살인 혐의 대신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한 배경에 지휘 라인의 개입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C 경감이 수사팀원들의 사건 처리 과정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도 확인됐다.
특별수사단은 또 일선 수사팀장의 독단만으로 중대 살인 사건의 증거와 수사 자료를 은폐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당시 보고·지휘 체계 전반을 살피고 있다. C 경감은 이르면 15일, 늦어도 16일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경찰과 별도로 수사 중인 검찰도 지휘 라인을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일 광산경찰서를 추가로 압수수색하면서 A 경무관과 B 경정을 증거인멸 방조 혐의로 입건했고, 전날 B 경정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C 경감이 송치돼 경찰로부터 수사 자료를 넘겨받는 대로 관련 혐의를 면밀히 조사할 방침이다.
◆ 묻지마 범죄로 위장한 계획범죄의 전말
피의자 장윤기(23)는 지난 5월 5일 오전 0시 11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대학교 인근 도로에서 귀가하던 17세 고교생 고 이채원 양을 흉기로 살해했다.
장윤기는 비명을 듣고 도우러 온 남학생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체포 직후 그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다 홧김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찔렀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의 보완 수사 결과 이 사건은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다. 장윤기는 범행 이틀 전인 5월 3일 직장 동료였던 20대 베트남 여성의 집에 침입해 13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했다.
이 여성이 탈출해 신고하자 장윤기는 경찰의 경고 문자에도 30시간 동안 이 여성을 스토킹하며 찾아다녔다.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한 장윤기는 범행 대상을 무고한 이 양으로 바꿔 1.2km를 미행했다. 그는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세운 뒤 뒷좌석 문을 열어두고 이 양의 목을 졸라 제압해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으나, 이 양이 거세게 저항하자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는 경찰의 심각한 부실 수사와 유착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국가수사본부는 유구무언이라며 공식 사과하고, 해당 수사팀 전원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 결정적 증거 앞에 성범죄 목적 살인 시인한 2차 공판
한편 일반 살인죄는 하한이 징역 5년인 반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장윤기는 중형을 피하고자 지난 6월 22일 열린 1차 공판까지 성폭행 목적의 범행 동기를 보류하며 사실상 부인해왔다.
하지만 13일 열린 2차 공판에서 장윤기는 성범죄 목적 살인을 포함한 공소사실 일체를 인정했다.
검찰이 재압수수색을 통해 장윤기 아버지의 집에서 회수한 케이블타이와, 뒷문을 열고 납치를 시도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긴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장윤기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7월 27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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