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이후 첫 공개 행사에서 “정치적 글쓰기와 내면적 글쓰기는 나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한강은 제80회 아비뇽 연극 축제의 부대 행사로 열린 ‘카페 데지데(Café des idées·생각의 카페)’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작가와의 대화’ 형식으로 마련된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 철학에 관해 들려줬다.
이번 대담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나선 공식 공개 행사인 데다, 올해 아비뇽 연극 축제가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하면서 국내외 독자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아시아권 언어가 공식 초청 언어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민주화운동 소재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이후 한강은 사람들로부터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 것이냐’란 질문을 자주 받았다며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강은 자신의 대표작들을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것도 굉장히 정치적인 소설이고 ‘소년이 온다’는 사람들이 사회적 소설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제게는 굉장히 개인적인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도 한강은 “역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한강은 자신의 작품이 한국 현대사라는 특정 시공간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전 역사에 걸쳐서 인간들이 반복해서 저지르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며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언제나 남게 되는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 애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 오직 한국 역사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한강의 집필 원칙도 공개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도 그렇고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렇고 그 구술 증언들이 굉장히 저에겐 중요했다”며 “수백 명의 증언들을 가능한 한 다 찾아 읽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에는 파편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생생하게 제가 파편들 속에 존재해보려고 노력했다”며 “전체를 조망하는 책들은 맨 나중에 읽었다. 그게 저에게는 중요한 원칙이었다”고 밝혔다.
이때 생존자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지 않는 방식도 함께 전해 한강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한강은 “그분들은 이미 다 증언을 하셨는데 제가 다시 가서 그 상처를 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는 최대한 그 증언들을 읽고 그 경험 속에 있고자 노력했고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한강은 “쓰고 싶은 소설이 3개 있는데 저는 빨리 완성하지 못하는 편”이라며 구체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얘기하면 신비로움이 사라지니 ‘쓰고는 있다’ 정도로 말하겠다”고 귀띔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로르 애들러와 함께 약 90분간 이루어진 대담 중 한강은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를 직접 낭독했다. 대담 이후에는 현장에서 즉석 팬 사인회도 가졌다.
한편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낭독 공연 ‘오아조(Oiseau·새)’가 오는 15~16일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열린다. 이 공연에는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함께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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