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기업 후원받는 ‘리딩더퓨처 팩’
대규모 자금 지원·반대측 낙선운동
親규제 진영도 자금력 맞대응 속
뉴욕주 하원의원 후보 낙마 주목
美행정부 주별 AI규제 제한 정책에
민주당 의원 일부 반대 법안 발의
기술업계 “통일된 기준 마련” 주장
‘연방우선권’ 인정 여부 최대 관건
미국 상·하원 의원을 선출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공지능(AI) 규제가 선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기술기업들이 직접 선거자금을 조직해 AI 규제 강화 입장을 취하는 후보의 낙선운동을 벌이거나 반규제 입장의 후보 지원에 나섰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AI 규제 강화 진영도 자금력을 모아 이에 맞서고 있다. 이들이 각각 AI 규제 반대와 강화 입장의 후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당선시키려고 하는 것은 이후 의회에서 벌어질 AI 규제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다. 미국 기술기업의 막대한 자금·기술 영향력을 볼 때 중간선거 이후에도 AI 친규제 대 반규제 진영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I 규제 전장 된 뉴욕12구
중간선거에서 ‘AI 규제’ 전쟁이 부각된 것은 뉴욕12구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친규제와 반규제 진영이 정식으로 맞붙으면서다. 뉴욕주 차원의 AI 규제 법안인 레이즈법(RAISE Act)을 주도한 알렉스 보어스 뉴욕주 하원의원이 이 지역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핵심 승부처가 됐다.
반규제를 내세운 ‘리딩더퓨처(leading the future) 팩(PAC·정치행동위원회)’은 수천만달러 규모의 광고 캠페인을 통해 보어스 의원의 낙선운동을 벌였다. ‘리딩더퓨처 팩’은 다수의 기술기업계 인사들이 후원하는 반규제 지지 조직이다. 오픈AI 공동창업자 그레그 브록먼, 팔란티어 공동창업자 조 론스데일, AI 기업 퍼플렉시티, 벤처캐피털리스트 안드리슨 호로위츠 등의 후원을 받고 있다.
다만 최근 오픈AI는 일부 AI 입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브록먼 개인의 정치 후원이 회사의 공식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AI 선두 기업 중 하나로서 회사 차원에서 반규제 입장으로 규정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 12구가 AI 규제 전쟁에서 전국적인 상징성을 얻자 규제 강화 진영도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 AI 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민주당 계열 조직인 ‘일자리와 민주주의 팩’이 수천만 달러를 모금해 리딩더퓨처 팩에 맞불을 놨다. AI 연구자·안전운동 관계자들이 ‘드림 NYC’ 이름으로 250만달러(약 37억원)를 모금해 보어스 의원을 추가 후원하기도 했다.
특히 일자리와 민주주의 팩은 AI 안전과 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초당파 정치단체인 ‘퍼블릭퍼스트액션’의 지원을 받았는데, 퍼블릭퍼스트액션은 드물게 친규제 입장의 AI 기업으로 알려진 앤트로픽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앤트로픽은 퍼블릭퍼스트액션에 2000만달러를 기부할 당시 이 자금이 연방선거자금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는 퍼블릭퍼스트액션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친규제 진영을 지원한 것으로 미 언론들은 보고 있다. 뉴욕 12구에서 친규제와 반규제 진영에 기술기업계의 자금이 모두 포진한 것이다. 다만, 친규제 진영의 모금력에는 기술기업의 영향력이 훨씬 적다.
리딩더퓨처의 낙선운동에 시달린 끝에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뉴욕12구 경선에서 결국 보어스 하원의원은 2위에 그쳤다. 하지만 AI 전문 매체 트랜스포머는 이 사태가 AI 기업의 승리를 뜻하지는 않는다며 선거전에서 AI 규제와 관련한 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마이카 레이셔 후보는 원래부터 이 지역에서 앞서나가고 있었던 데다 완전한 반규제 입장도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기술기업계 낙선운동의 덕을 본 레이셔 후보는 경선 승리 연설에서 “이번 의석에 유난히 큰 관심을 보인 AI 기업에 한마디 하겠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지키며, 환경을 지키는 문제에서 나는 당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보어스 하원의원도 패배 뒤 지지자들을 만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기술기업계) 가운데 일부가 이번 선거를 본보기로 만들고 싶어 했다”면서도 “미래의 승리는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이룬 진전을 토대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친규제와 반규제 진영의 정치 활동은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리딩더퓨처 팩은 일리노이에서 민주당 출신 전직 하원의원 멜리사 빈 지원에 110만달러,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공화당 후보 로리 버크하우트 지원에 50만9000달러를 투입했고, 두 후보 모두 승리했다. 텍사스에서는 톰 셀, 제이스 야브러, 제시카 스타인먼, 크리스 고버 4명의 후보를 지원하는 데 총 140만달러를 투입했는데 이 중 고버 후보와 스타인먼 후보, 야브러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했으며 셀 후보는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이에 맞서는 퍼블릭퍼스트액션 역시 친규제 후보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AI 규제 강화 입장이자 민주당 소속인 발레리 푸시 노스캐롤라이나 하원의원에게 160만달러를 지원하고, 텍사스에서도 알렉스 밀러, 카를로스 데라크루스, 콜린 올레드 후보 등에 약 83만달러 자금이 지원됐다. 이들은 모두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AI 업계, 규제 입법 ‘각축전’ 대비
AI 업계의 목적은 선거에 개입해 향후 AI 규제와 관련한 여러 쟁점에서 업계에 유리한 의회 지형을 만들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AI 규제와 관련된 입법 논의는 향후 기술 후발주자인 다른 나라에도 확대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법률전문 웹사이트인 리걸클래리티에 따르면 2026년 중반 기준으로 현 제119대 미 의회에서는 AI와 관련된 연방법안은 80건 이상 발의된 것으로 집계된다. 이 중 실제 법률로 제정된 것은 현재로선 초당적 지지를 받아 통과된 ‘테이크잇다운법(TAKE IT DOWN Act)’뿐이다. 이 법은 당사자 동의없이 유포되는 친밀한 사적 이미지를 고의로 배포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면서 AI 생성이미지도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이외 AI 규제와 관련된 여러 법안은 사실상 대부분 다음 의회로 넘겨지게 된 셈이다. 여기엔 딥페이크 형사처벌부터 군사 분야 AI 사용 제한,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 보호에 이르기까지 AI 발전과 함께 새롭게 생겨난 여러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내용들이 포함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권한으로 발의하는 행정명령을 통한 AI 정책을 선호하는데, 최근 AI 업계의 요구와 국가 안보를 위한 규제 필요성을 절충한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이것이 AI의 위험성을 방지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보는 친규제 성향의 의원들 사이에선 AI 관련 입법 시도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주정부 차원의 AI 규제를 연방정부가 무력화할 수 있는 연방우선권(federal preemption)을 인정하느냐 여부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별 AI 규제를 제한하는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민주당 의원 일부는 이에 맞서 주정부의 규제 권한을 지키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공화당 일각에서도 주정부의 규제 권한을 인정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다.
다만 기술업계는 전국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왔다. 주마다 서로 다른 AI 규제가 계속 늘어나면 기업들이 이를 모두 준수하는 데 과도한 부담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2026년에만 미국 각 주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AI 법안이 1000건이 훨씬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이에 모두 대응하면서 기술 혁신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주정부와 소비자단체, 친규제 입장의 일부 의원들은 이에 반대한다. 이들은 연방의회가 AI 입법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정부들이 실제 피해에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연방정부의 규제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주정부가 더 강력한 보호조치를 마련하는 것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파울루 카르방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은 포브스에 이달 초 기고한 글에서 “6개월 전 나는 2026년 AI가 정치의 핵심 의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그 예측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며 “산업계, 정치 지도자 등이 모두 AI의 미래에 대해 다른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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