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구권 국가와 연대 강화해온 北
핵심 우군 페루마저 친미 노선 전환
쿠바는 韓과 수교 등 경제 개방 속도
北 ‘적대적 두 국가’ 규정에 부담 덜어
北, 브라질·멕시코로 눈 돌리지만
양국 모두 한국과 경협 확대 활발
전문가 “우파 집권 블루타이드 확산
北 정치적 연대만으론 한계” 전망
지난해 12월 백악관은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해 중남미를 비롯한 서반구를 미국의 전략적 최우선 지역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서반구 동맹 재편을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에게 중남미의 이른바 ‘블루타이드’(우파 집권 물결)는 호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외교, 안보, 경제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사회주의 성향의 세력이 집권한 중남미 국가를 우군으로 삼았던 북한에게는 악재다. 미국 중심의 외교질서가 강고해진다는 것은 북한 외교의 설자리가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서반구 전략과 잇단 우파 집권이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비서구권 개발도상국) 외교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외교의 버팀목, 글로벌사우스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의 글로벌사우스 국가는 북한에게 중요한 외교적 공간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유엔 총회와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등 국제무대에서 우호 세력을 확보하고, 정치·경제적 고립을 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국가가 늘어날수록 국제사회의 압박을 분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의료, 농업 등으로 제한되기는 해도 경제협력의 통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북한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사우스 외교에 더욱 공을 들였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서 ‘다극 세계’ 구축을 핵심 외교 기조로 내세우며 비서구권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한 것이다. 최선희 외무상은 지난해 10월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제3차 유라시아 안보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패권주의적 일극 세계’를 비판하며 다극 질서 구축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중남미, 중동 국가들과의 고위급 교류를 확대하며 중국, 러시아를 넘어 글로벌사우스 전반으로 외교 기반을 넓혀 왔다.
◆‘남미 거점’ 페루도 친미로 선회
중남미 글로벌사우스가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를 위한 현실적 지렛대가 되어 온 만큼 최근 이 지역 정치 지형 변화는 북한에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가 최근 대선에서 친미 우파 성향의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승리한 페루다. 반미 성향이 강하지는 않지만 페루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현재 북한이 남미에서 공관을 유지하고 있는 5개국(멕시코·베네수엘라·브라질·쿠바·페루) 가운데 하나로, 역내 핵심 외교 거점으로 평가받아 왔다.
페루는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북한 외교관 전원을 추방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양국 관계를 격하했다. 그러나 북한은 2023년 재정난으로 전 세계 10여개 재외공관을 폐쇄하면서도 주페루 대사관은 유지했다. 북한이 페루를 남미 외교의 거점으로 인식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호세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2021.07∼2022.12 재임)의 후보 시절에는 평양 방문 이력이 있는 친북 성향 정치인 유리 세사르 카스트로 로메로가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는 등 북한과의 정치적 접점도 이어졌다. 그러나 카스티요 대통령 탄핵 이후 디나 볼루아르테 행정부를 거쳐 친미 성향의 후지모리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페루의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게 됐다. 지난 3일(현지시간) 대선에서 승리한 후지모리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이자 정치적 후계자로 미국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확대하고 중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남미에서 공을 들여온 외교 거점인 페루가 친미 노선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주페루 북한대사관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미 3국’도 균열… 흔들리는 北 우방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인 반미 3국(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후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에너지·광업 분야 규제를 손질하고, 미국 기업의 투자 재개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약 1700억달러 규모의 디폴트 채무 재조정을 위해 미국계 글로벌 로펌 호건 로벨스를 법률 자문사로 선임했다. 반미의 상징으로 꼽히던 베네수엘라가 국제금융시장 복귀를 위해 미국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리승길 주베네수엘라 대사가 2023년 11월 이임한 이후 후임 대사를 임명하지 못한 채 3년째 대사대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쿠바도 북한에는 뼈아픈 사례다. 2024년 2월 한·쿠바 수교는 북한에 적잖은 외교적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외교가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쿠바에서 한국과의 수교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이전보다 낮아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한이 남북을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쿠바가 한국과의 수교를 북한의 대남 원칙에 반하지 않는 별개의 국가 간 외교로 받아들일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쿠바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강한 압박에 민간 부문 확대와 외국인 투자 유치 등 경제 개방을 추진하며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전통적 우방국들마저 이념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외교·경제 노선을 조정하면서 북한의 중남미 외교 기반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니카라과는 북한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다. 북한은 글로벌사우스 외교를 본격화한 2023년 산디노(Sandino·반미 혁명 영웅) 혁명승리기념일을 계기로 양국 협력 확대를 추진했다. 이후 양국은 대사관 재개설에 합의했고, 니카라과는 평양에 대사관을 다시 개설하는 대신 서울의 주한 니카라과대사관을 전격 폐쇄했다. 당초 니카라과는 대통령 정책보좌관을 초대 주북한 대사로 내정했지만 북한의 장기적인 국경 봉쇄로 계획이 지연됐고, 이후 마나과 시의원이던 마르티네스가 신임 주북한 대사로 선임됐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니카라과에 대사관을 설치하지 않으면서 양국 관계는 기대만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실용외교 벽 넘을까
브라질과 멕시코는 북한이 최근 외교 활동 재개를 본격적으로 모색하는 국가다.
브라질에서는 송세일 전 북한 외무성 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 국장이 지난 4월 신임장을 제출하며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브라질도 리카르두 프리무 포르투갈을 신임 주북한 대사로 내정하며 약 10년 만에 대사급 외교관계 복원에 나섰다. 멕시코 역시 2020년 송순룡 북한 대사가 부임하면서,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대사급 외교가 재개됐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브라질과 멕시코만으로 북한이 중남미 외교 기반을 되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이념보다 투자와 공급망, 통상협력을 우선하는 실용주의 외교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일본, 유럽연합(EU),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한국과의 협력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양국은 지난 2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한·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브라질은 외무부 통상정책국장 출신인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지 아제베두 피멘텔을 신임 주한 대사로 임명하며 경제협력 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멕시코는 한국 기업의 생산·수출 거점으로 북미 공급망의 핵심 축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접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북한의 활동 폭은 제한적이다. 주멕시코 북한대사관은 현재 현지에서도 활동이 미약한 공관으로 분류되며, 송순룡 대사의 공개 활동도 거의 없는 상태다. 브라질과는 외교관계가 복원되고 있지만 경제·투자 분야에서 한국과 경쟁하기에는 역량 차이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서반구 전략과 중남미의 블루타이드 확산은 북한이 기대했던 글로벌사우스 외교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기존 우방국마저 실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정치적 연대만으로는 외교 공간을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동물의 법적 지위](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07/128/20260707522909.jpg
)
![[데스크의 눈] 아이는 어른이 만든 세상에 산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3/17/128/20260317520231.jpg
)
![[김상미의감성엽서] 차도하 시인](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6/23/128/20260623516944.jpg
)
![[오늘의시선]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하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07/128/20260707522829.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