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으로 불린 미얀마 여성 ‘샤빼’
동료 보파에게 편지로 말하는 형식
고향의 전쟁·지진 소식 들려주고
또다른 노동자 이야기 소소히 전해
金작가 “딸기, 누구에겐 폭력적 과일
샤빼의 말, 결국 자신에게 건네는 것
임금체불 사연 듣고 딸기밭 배경 설정”
그녀는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고 있는 그녀의 현재 모습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그녀 역사와 아직 오지 않은 그녀의 미래가 동시에 궁금했다. 그녀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공간과, 그녀의 물건들도.
크메르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그는 한국어가 서툰 캄보디아 출신 이주 노동자인 그녀와 한국어로 띄엄띄엄 전화통화를 하며 서로 만날 날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녀가 자신의 원룸으로 초대했고, 그는 약속일에 기차를 타고 밀양에 내려갔다.
“좀 긴장이 됐어요. 그녀의 공간에 들어가 보고 싶긴 하지만, 제가 불편한 손님이 될까 봐요. 그런데 그녀가 밝고 환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며 저를 맞아주더라고요. 마치 기다리고 있던 손님을 맞듯. 집 안으로 들어섰는데, 식탁 겸 책상으로 쓰는 작은 탁자 위에는 여러 과일과 빵, 음료가 마련돼 있고요. 깻잎 농장에서 깻잎을 따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니읍의 얼굴을 마주한 그날, 이 소설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2년 전, 소설가 김숨은 니읍의 원룸에서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어머니 사진, 그녀가 보고 있는 책, 그녀의 인형들을 소재로 가져오며 대화를 풀어나갔다. 니읍은 알거나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를 총동원하거나 번역기를 돌려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기차표를 계속 연장해야 했다. 그는 이후 경기 김포 이주노동자쉼터 등을 드나들며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 노동자를 만나 왔다.
디아스포라 난민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각 장애인까지 우리 사회 주변부로 내몰린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문학으로 옮겨온 소설가 김숨이 이번에는 딸기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장편소설 ‘딸기 이론’(민음사)을 들고 돌아왔다.
소설은 한 지방의 딸기밭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미얀마 여성 이주 노동자 ‘샤빼’가 함께 일해 온 캄보디아 출신 미등록 이주 노동자 ‘보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작품이다.
“보파, 너와 내가 이렇게 함께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는 것이 확률 80억 분의 1인 우연에 당첨됐기 때문이라는 거 알고 있어? 월드마트의 연말 경품 당첨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우연에 당첨되고도 우리는 친구가 아니야. 우리는 다른 계절에, 다른 날에, 딸기밭에 던져졌어. 우리의 던져짐을 한국어로는 ‘이주’라고 하지. 이 단어가 나는 오이나 가지 같은 한국의 밭에서 나는 채소 이름 같아.”
샤빼는 미얀마어를, 캄보디아 출신 보파는 크메르어를 각각 사용하는 데다 두 사람 모두 영어와 한국어에 서툴러 7년째 함께 일하고 같은 방을 쓰면서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각자의 물건을 구분하며 ‘프로미스’를 다짐받는 ‘국경’의 말뿐.
딸기밭에서 ‘6번’으로 불린 보파는 샤빼에게 이름 한 번 물어본 적이 없지만, ‘3번’으로 불린 샤빼는 그런 보파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보파의 모습을 보여주듯 말하기도 하고, 다른 동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향에서 일어난 지진과 전쟁을 들려주고, 보파의 고향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묻기도….
이들의 세상은 딸기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딸기는 돈이 되고, 돈은 총알이 되어 국경 너머 사방으로 퍼진다. 딸기는 사슬처럼 여자애들의 손을 묶지만, 딸기를 따는 손은 노동하는 다른 손을 궁금해하며 넝쿨처럼 뻗어나간다. 길 건너 비닐하우스에서 깻잎을 따는 손부터, 돼지 및 닭과 함께 갇힌 손으로, 미얀마 강가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엄마의 손까지. 이 손들을 잊지 않기 위해, 아니 닿기 위해, 샤빼는 말하고 또 말한다. 딸기를 통해 이해되는 이 세상을, 사람과의 관계를, 보파를….
소설 안에는 샤빼와 보파 외에도 다양한 이주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온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로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때론 복잡한 내면은 물론, 좌절과 욕망까지 담지한, 다양한 존재로 그려진다. 오직 한 사람으로.
소설가 김숨은 왜 이주 노동자들을 그려야만 했을까. 그가 그린 이주 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김 작가를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이야기는 시골의 딸기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왜 하필 딸기, 딸기밭이었습니까.
“그날 밀양의 니읍이 저를 위해 준비한 과일 중에는 딸기가 없었어요. 열대 과일들만 있었지요. 깻잎 따는 일을 하기 전, 그녀가 처음 딴 농작물이 딸기였기에 저는 당연히 딸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딸기가 싫고 먹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딸기를 딸 때 손을 찌르는 등 딸기 따기가 더 힘들다고 하더군요. 예쁘고 맛있는 딸기가 누군가에겐 폭력적인 과일이 될 수도 있구나. 나중에 딸기밭에 고용돼 3개월 동안 딸기를 따고도 석달치 임금을 받지 못해 소송 중인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증언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딸기밭이 제 소설의 배경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왜 미얀마 여성 노동자 ‘샤빼’가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보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인가요.
“샤빼가 보파에게 건네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합니다. 샤빼는 보파에게,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딸기밭의 딸기를 따는 모든 여자애에게 계속 질문합니다. 자신이 왜 딸기밭에 있는 것인지, 누가 자신을 그곳에 데려다 놓았는지. 딸기가 자신에게 무엇이고, 무엇을 가져다줄 것이며, 무엇을 상실하게 했는지를….”
─속휑의 죽음이나 도망치려는 보파 등 작은 사건은 여럿 있지만 소설 전체를 뒤흔드는 큰 사건은 보이지 않는데요.
“글쎄요. 저는 서사를 의식하고 소설 쓰는 걸 재미없어 하는 것 같습니다. 주제가 뚜렷한 것도, 인물들의 대립이 분명한 구도 역시 제게는 매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대답이 다를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딸기 이론’에서 가장 인상 싶은 사건을 말해야 한다면, 샤빼가 사모님에게 다가가 자기가 누구인지 묻는 장면을 뽑고 싶습니다. 요양원에 유폐된 사모님이 휠체어를 타고 딸기밭을 보러 오지요. 박제 짐승처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모님에게 샤빼는 다가갑니다. 딸기 따는 여자애들이 오기 전 딸기밭에서 혼자 딸기를 땄을 ‘최초의 딸기 따는 여자애’인 사모님에게 샤빼는 자기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1974년 울산에서 조선소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서 대전에서 자란 김숨은 1997년 단편소설 ‘느림에 대하여’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이듬해 단편소설 ‘중세의 시간’이 문학동네 신인상에 차례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본명은 김수진. 그는 이후 장편소설 ‘철’,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듣기 시간’, ‘제비심장’, ‘잃어버린 사람’, ‘간단후쿠’ 등을, 소설집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등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소설가 김숨의 24시간은 여전히 글쓰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 다만 이전보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하루 일과도 더욱 빨라졌다. “새벽 시간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한 뒤, 집중력이 좋은 오전에는 쓰고 있는 소설에 몰입한다. 오후에는 자료를 찾아 읽거나 사람을 찾아 나서고, 밤엔 머리를 비우다가 다시 내일을 위해 꿈나라로. 그는 갈 수 있는 곳에 가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곡진하게 들을 것이다. 소외되고 뿌리 뽑힌 이들의 목소리를. 그 속에 보파를 향해 교신하는 샤빼의 목소리도.
“보파, 지구와 비슷한 외계 행성이 발견됐대. 지구와 146광년 떨어진 그 행성은 딱 한 번 관측됐는데 쌍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지구와 닮았다고 해. 지구 어딘가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고 있어. 그리고 지구 어딘가에서는 인간이 우주를 들여다보며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찾고 있어. 친구가 되기 위해서.”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장시간 노동’ 국가 한국](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06/128/20260706518970.jpg
)
![[채희창칼럼] ‘허위조작정보근절법’ 이대론 안 돼](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06/128/20260706518986.jpg
)
![[기자가만난세상] 정이한 사태를 보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06/128/20260706518916.jpg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권력자들의 개선문 만들기 경쟁](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06/128/20260706518836.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