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드롬은 ‘오징어 게임’ 유일
‘비영어권 1위’ 수식이 비주류 의미
제작 수 감소 심각… 긴급지원 필요
“한국 영상산업은 이미 ‘데프콘 2’ 단계다. 상황에 걸맞은 대응이 필요한데, 아무도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K드라마를 ‘월드 클래스’라고 착각하니 필요한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산업을 육성할 정책 논리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에서 만난 조영신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겸 미디어엔터연구소 C&X 대표)는 국내 드라마 산업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K콘텐츠 성공 신화에 가려졌지만, 실제 현장은 긴급 처방이 필요한 위기 국면이라는 것이다.
조 대표는 무엇보다 ‘한국 드라마가 이미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K팝이 글로벌 주류가 됐으니 K드라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며 “지금 K드라마의 위상은 보아가 아시아 시장을 평정했던 20년 전 K팝 수준으로 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는 BTS·블랙핑크로 대표되는 K팝이 전 세계 팬덤을 구축한 것과 달리, K드라마는 여전히 지불 능력이 낮은 아시아와 남미를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고 북미와 유럽에서 소수 작품만 성공하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조 대표는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는 지금까지도 ‘오징어 게임’이 유일하다”며 “한국 작품이 ‘비영어권 1위’를 했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표현 자체가 아직 세계 시장의 주류는 아니라는 뜻”이라고 짚었다.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 행태도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구매하는 글로벌 사업자가 왜 넷플릭스와 디즈니+뿐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HBO·파라마운트 등 명실상부한 미국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북미 콘텐츠보다 훨씬 저렴한 K드라마를 확보하려 들지 않는 이유를 추측해 보면, 아직은 일부 지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콘텐츠는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하다는 설명이다.
넷플릭스 시청 점유율 역시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해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점유율은 미국 콘텐츠가 56.6%로 1위, 한국 콘텐츠가 10.1%로 2위였다. 조 박사는 “순위보다 1위와의 격차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드라마 제작비가 크게 상승한 만큼 최소 15~20%의 점유율을 확보해야 제작사들도 플랫폼과의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며 “단순히 순위보다 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성과 지표를 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건 드라마 제작 편수 감소다. 방송사와 국내외 OTT를 합친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연간 100편 안팎에서 2022년 136편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다시 110편 안팎으로 감소했다. 그는 “최소한 연간 120편 수준은 유지돼야 다양성과 실험성이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제작 편수가 줄면 실패를 감수하는 투자도 사라지고, 결국 안전한 작품만 반복해서 찍어내는 구조가 된다는 지적이다.
중앙그룹발 쇼크도 같은 맥락에서 우려했다. JTBC는 그간 연간 10편 안팎의 드라마를 선보여온 핵심 사업자. 그는 “법원의 관리 아래 JTBC 비용 집행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광고 수익을 위해 예능 제작은 일정 부분 유지하겠지만, 예전처럼 매년 10편씩 드라마를 제작하는 JTBC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렇게 되면 한국 시장에서 연간 10편의 드라마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한 편당 스태프를 100명으로만 잡아도 연간 1000명의 밥벌이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기반이 흔들리는 문제”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지금 시급한 것은 긴급 안전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이 나면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전에 먼저 불을 끄고 사람부터 구하듯,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어 “외주 제작사와 프리랜서 스태프들의 임금 체불이 현실화하면 현장은 IMF 외환위기 때에 준하는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정부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긴급 생계 지원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산업 정책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지금처럼 단편적인 보조금 사업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민간 제작사에 대한 직접 투자나 콘텐츠 전문 투자공사 설립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너무 급진적인 주장이라고? 지금껏 해온 정책을 반복한다면 한국 드라마 산업은 2015년 이전처럼 내수 중심의 제한된 시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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