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주목한 핵심 변수…최근 성적·부담 중량·말의 나이
‘촉’에서 ‘데이터’로…이젠 경마도 ‘확률’ 읽는 시대
경마장에는 오래된 믿음이 있다. 좋은 말은 눈빛이 다르고, 베테랑 기수는 출발 직전 이미 승부를 안다고들 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경마는 ‘베테랑의 촉’과 ‘경험’이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 오래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경마를 해석하는 기준이 감각에서 데이터와 확률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공지능(AI)은 말의 눈빛이 아니라 혈통과 기록, 주로 상태, 기수와 말의 호흡 등 수많은 조건이 만들어내는 승률을 계산한다.
한국마사회가 공개한 2024년 5월부터 2025년 4월까지의 경주 데이터 9140건을 활용한 최근 국내 연구에서는 AI의 우승 확률 예측 성능을 비교·분석했다. 분석에는 LightGBM, XGBoost, CatBoost 등 6개 머신러닝 모델이 사용됐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순위 예측 성능을 평가하는 지표인 NDCG에서는 CatBoost가 0.8895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상위권 예측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MAP 역시 0.4204로 가장 우수했다. 다만 이는 연구에서 사용한 순위 예측 성능 지표일 뿐, 실제 베팅 적중률과 동일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
반면 실제 베팅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에서는 LightGBM과 XGBoost가 더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알고리즘마다 강점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AI는 승부를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우승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추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AI가 어떤 정보를 중요하게 보는지다. 직전 5경기 성적과 부담 중량, 말의 나이 등이 대표적인 변수였다. 인간이라면 여러 장의 출전표를 펼쳐 하나씩 따져봐야 할 요소들이다. 그러나 AI는 이들 변수를 동시에 분석해 각각이 승률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한다. 경험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승부가 데이터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AI가 보는 것은 말이 아니라 조건이다. 한 마리의 말이 우승할 가능성은 혈통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거리와 부담 중량, 기수와 조교사, 휴식 기간, 최근 컨디션, 주로 상태, 상대 전적 등 수많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인간이 이 모든 변수를 동시에 계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AI가 계산하는 것은 ‘어떤 말이 반드시 이기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이 말의 우승 확률이 가장 높아지는가’다.
사실 AI와 경마의 만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AI를 활용한 경마 예측 연구는 40년 넘게 이어져 왔으며, 최근에는 딥러닝과 순위학습, 컴퓨터비전 등을 결합해 예측 성능을 높이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경마는 더 이상 ‘누가 맞히느냐’의 영역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정교하게 해석하느냐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국내 연구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서울 경마 데이터를 활용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Random Forest보다 LambdaMART와 CatBoost Ranker 등 순위 예측에 특화된 알고리즘이 더 높은 성능을 보였다. SHAP(AI의 예측에 어떤 변수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는 기법) 분석 결과 최근 성적과 직전 경기 기록, 훈련 횟수, 질병 이력 등이 우승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나타났다. AI는 이제 결과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예측이 나왔는지까지 설명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AI가 모든 승부를 맞히는 것은 아니다. 경마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뛰는 스포츠다. 출발 직후의 충돌, 기수의 순간적인 판단, 말의 심리와 컨디션, 날씨와 주로 변화처럼 데이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AI는 미래를 예언하는 기술이 아니라,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도구에 가깝다.
그럼에도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한때 베테랑의 촉이 지배했던 경마장에 데이터가 들어오고 있다. 경험과 직관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숫자로 검증하는 시대다. AI는 베테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베테랑의 촉을 숫자로 검증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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