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무려 3년 가까이 ‘태움’으로 불리는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강수빈(27)씨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20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꾸려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태움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라며 진상 규명과 엄단을 지시했다.
◆ 경찰, 20명 규모 전담수사팀 편성
경기남부경찰청은 2일 허태규 광역범죄수사대장을 팀장으로 하는 20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꾸려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전담팀은 수사관 10명과 의료수사 담당 3명, 피해자 보호 2명에 법률지원 인력을 더해 편성됐다.
경찰은 숨진 강씨 주변인 진술 조사와 휴대전화 분석 등을 통해 실제 괴롭힘이 있었는지, 형사 책임을 물을 만한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를 규명할 방침이다.
강씨는 지난달 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지난해 병원을 그만둔 뒤 노동당국에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자살할 때까지 태울 수 있다”
앞서 지난달 29일 MBC 보도를 통해 3년 가까이 태움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강씨의 사연이 알려졌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으로 길들이는 악습을 가리킨다.
3년 전 꿈에 그리던 간호사복을 입은 강씨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태움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살할 때까지 태울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들어야 했다. 강씨의 어머니는 “근무가 끝나고 방에서 저한테 그 얘기를 하면서 엄청 오열했다”고 털어놨다.
◆ 일기장에 남은 “하루하루 지옥”
태움의 고통은 일기장에도 남아 있었다. 일기에는 ‘인사를 안 받는다. 불리한 일이 생길까 봐 안 받는 인사를 열심히 했다’ ‘하루하루 지옥 같다. 하지만 그만두면 월세를 못 낸다. 그 지옥으로 계속 뛰어들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강씨는 어머니에게 “내가 좀 더 열심히 하고 선배한테도 좀 살갑게 굴면 좀 달라지겠지. 엄마 나 좀 더 참아볼게, 나 버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태움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4월 병원을 떠났다.
◆ 가해자 3명 중 1명만 ‘훈계’
퇴사 후 강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부 인정받았다.
그러나 가해자 3명 가운데 1명만 괴롭힘이 인정됐고, 병원의 징계도 그 1명에 대한 ‘훈계’에 그쳤다.
가해자 모두가 그대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강씨는 지난달 2일 세상을 등졌다.
병원 측은 “부서 이동을 제안했지만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다”며 “노동부 시정지시 내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해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일부라도 인정됐음에도 실제 제재가 ‘훈계’에 그치고 가해자들이 현장에 그대로 남았다는 건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시행 이후에도 위계적 조직문화 앞에서 제도의 실효성이 여전히 취약함을 드러낸다.
◆ 되풀이된 ‘태움’…대통령 “정당화 못 할 폭력”
간호사 태움 문제가 사회적 파장을 부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신입 간호사 박선욱씨가 태움에 시달리다 숨진 사건은 2020년 ‘업무상 질병’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도 산재로 인정됐다. 그럼에도 악습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강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엑스(X·옛 트위터)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도, 조직문화라는 이름으로도 태움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즉시 해당 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하겠다”며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한 점 의혹 없이 명확히 규명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사 위험이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무작위 불시 기획감독을 실시하겠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따라 강씨가 근무했던 병원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하고, 유사 위험이 있는 의료기관으로 기획감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유가족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며 “누구나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일할 당연한 권리가 일터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정부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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