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욕망에 대응하는 두 제자의 방식
문학과 음악, 이른바 ‘재능의 영역’으로도 불리는 예술 무대 위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종종 이상적인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제자를 향한 ‘교육’이 어느덧 스승 자신의 ‘욕심’으로 변하면 이들의 관계는 숨 막히는 사제관계로 치닫는다.
지난달 공개해 주목받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과 2015년 개봉해 여러 상을 석권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위플래쉬(Whiplash)’는 스승의 욕망을 제자에게 투영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결로 변주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가르침과 집착의 아슬아슬한 사제관계 경계선,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들여다봤다.
◆ 제자를 통해 성공을 꿈꾸는 스승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교수인 허문오(최민식 분)가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학생 이강(최현욱 분)의 천재성을 발견하면서 진행되는 서스펜스 심리극이다. 허문오는 이강의 글에 매료돼 개인 문학 수업을 진행하지만, 점차 그의 재능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타인의 가정을 엿보고 글을 쓰라고 지시하는 등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인다.
영화 ‘위플래쉬’는 최고의 지휘자이자 최악의 폭군인 플레쳐(J.K 시몬스) 교수가 이끄는 재즈 밴드에 신입생 드러머 앤드류(마일즈 텔러)가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채찍질’이라는 영화 제목 의미에 걸맞게 플레쳐는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이 제일 쓸데없고 해로운 말이라고 하며 폭언과 학대로 앤드류를 극한까지 몰아세운다.
전문가들은 이를 스승이 제자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심리로 분석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제자의 성공을 나와 ‘동일시(Identification)’하고 목적을 위한 학대를 ‘합리화(Rationalization)’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라며 스승들이 제자를 통해 묘한 생동감을 얻거나 자신의 가혹함을 타협하는 심리를 짚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제자는 젊음을 잃은 스승의 ‘재생산 욕구’를 자극하는 대상”이라며 “학생에 대한 지배욕을 드러내고 감추는 복합적인 관계 역동이 서사를 이끈다”고 설명했다.
◆ 같은 사제관계, 다른 태도를 보인 제자들
강압적인 스승 아래 ‘맨 끝줄 소년’ 이강과 ‘위플래쉬’ 앤드류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위플래쉬’에서 앤드류는 스승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제자의 ‘인정욕’이 더 드러난다면 ‘맨 끝줄 소년’은 제자인 이강이 교수인 허문오의 욕망을 파고드는 ‘유혹자’에 가까운 역할을 맡는다.
영화 속 앤드류처럼 비합리적인 요구에 복종하는 제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곽 교수는 “스승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세뇌된 제자는 스승이 떠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며 “스승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관계를 과감히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스라이팅은 연극 ‘가스등(Gas Light)’(1938)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자신을 의심하게 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맨 끝줄 소년’에서 이강은 허문오의 요구를 수행하는 척할 뿐이다. 결국 허문오는 이강이 파놓은 함정과 자신의 욕망에 빠져 파멸로 치닫는다. 이 교수는 “‘맨 끝줄 소년’에는 스승과 제자 간의 권력관계를 뒤집는 전복의 쾌감이 바탕에 깔렸다”며 “스승이 지닌 ‘파국으로 향하는 욕망’의 위험성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라고 해석했다.
최근 공개된 드라마 ‘맨 끝줄 소년’부터 영화 ‘위플래쉬’까지 사제관계를 다룬 서사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대중의 관심을 끌어왔다. 특히 ‘맨 끝줄 소년’은 전형적인 사제관계의 틀을 깨뜨린 연출로 차별성을 더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선택하는 일반적인 대학교 작품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교수가 대학생에게 선택당하는 구조였다”, “교수가 제자의 무리한 부탁을 수용하는 전개가 신선하다” 등 기존의 클리셰를 뒤집은 설정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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