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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칩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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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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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 기업 가치가 이미 통제 불능”이라며 ‘AI 거품론’을 제기했다. 엔비디아·아마존·메타 등 AI 대표종목이 급락했다. AI 성장성은 의심받지 않았지만, 투자 심리는 과열됐다는 경고였다. MIT의 “AI 도입 기업 95%가 성과 없다”는 보고서도 거품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후 빅테크(거대기술기업)의 AI 투자는 호재가 아닌 악재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의 데자뷔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AI 거품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실적과 수요를 증명하며 시장 우려를 잠재웠기 때문이다.

올해 2월에는 또 다른 공포가 등장했다. 이른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와 종말(Apocalypse)의 합성어로, AI 에이전트가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담고 있다. 진원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한 AI’를 내세운 앤트로픽이었다. 앤트로픽이 법률·금융·코딩·영업 등 전문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를 공개하자 불과 48시간 만에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시가총액 약 420조원이 증발했다. AI가 소프트웨어 자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가 전 세계 시장을 덮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과도한 우려로 정리됐다.

중동발 고유가 인플레이션 우려가 AI 반도체 수요 급증이 촉발한 ‘칩플레이션’(Chipflation)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팀 쿡 애플 CEO는 메모리 가격 급등을 “100년에 한 번 있을 홍수”에 비유하며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약 20% 인상했다. 물가를 낮출 것으로 기대했던 AI가 오히려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는 역설과 마주한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것의 이면이기도 하다.

칩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글로벌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다. 공급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수요는 결국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그 여파가 PC와 노트북, 스마트폰 같은 소비재 가격 인상으로 번져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금융시장 공포는 사라질 수 있지만, 물가는 한번 오르면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AI가 주식시장 공포를 넘어 소비자 지갑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기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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