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봉사에서 배운 철학
조금씩 꾸준한 실천이 그의 인생 ‘모토’
양신현씨, “온 국민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봉사하면 아름다운 세상 될 것”
“좋은 하루 되세요. 다녀오세요.”
매일 아침 경기 구리역과 인근 횡단보도에는 어깨띠를 두르고 교통을 정리하며 출근길 시민들에게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한 남성이 있다. 공무원도 경찰도 아니다. 자동차 영업을 하는 평범한 시민 양신현(58)씨다. 사람들은 그를 ‘신호등 아저씨’라 부른다. 누구의 부탁도 없이 자발적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온 그의 아침은 올해로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6월의 마지막 날 오전 6시30분쯤, 양씨는 출근길 시민들로 분주한 구리역 앞에 나타났다. 그는 폴로셔츠에 정장 바지를 갖춰 입고 횡단보도 2개가 만나는 지점에 섰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손짓과 경광봉으로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왔다. 이어 오전 8시20분쯤에는 동인초등학교 앞 삼거리로 자리를 옮겨 등굣길 아이들을 맞이했다.
양씨는 차량 운전자와 버스기사를 향해 경례를 했으며, 보행자가 건널 때에도 늘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에게는 꼭 손을 흔들며 “잘생겼네!”라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초등학생은 ‘안녕하세요’라며 답했고, 시민들은 목례와 안부 인사로 화답했다. 버스기사들도 손을 들어 그의 인사에 답했다.
◆ 차 영업을 위해 시작한 일이 즐거움이 되다
양씨가 처음부터 봉사를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차를 팔려고 시작했습니다.”
그는 웃으며 봉사의 시작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자동차 판매 일을 하던 그는 영업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 얼굴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동인초등학교 아래 삼거리에서 남학생이 버스 뒷바퀴에 깔려 죽었다는 얘기를 동네 사람들로부터 듣게 됐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기왕에 좋은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그는 그렇게 2011년부터 교통봉사를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목적은 달라졌다.
“저는 이제 차를 팔기 위한 목적이 없어졌어요. 재미있습니다. 교통봉사를 한다고 1년에 저한테 차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근데 제 나름대로 자부심이 생기고 그게 축적된 거죠. 지금은 ‘애들을 좋아하니까 한 명이라도 안 다치게 하자’ 그게 목적입니다.”
◆ 신고도, 시기도…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재밌어서 했던 봉사였지만 처음에 그는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다. 일반인이 교통정리를 한다는 이유로 청와대에 신고되기도 했으며 영업사원들 사이에서 시기와 미움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은 그를 주저앉힐 수 없었다. 양씨는 “그냥 즐겁게 생각했다”며 “애들을 보면서 계속 봉사를 하니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침을 뱉는 사람에게도 한결같이 웃으며 대했다. 출근길 무단횡단을 하려던 한 젊은 남성은 제지를 당하자 그의 옆에 침을 뱉고 지나갔다. 몇 년 뒤 다시 마주친 그는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신호를 지켜 건넜다. 양씨는 그 순간을 15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처음에는 신호를 무시하던 운전자들도 시간이 흐르자 양씨를 만나면 우회전하기 전 멈춰 서기 시작했다.
2021년부터 양씨를 봐왔다는 버스기사 전모(70)씨는 “먼저 인사를 해주시니 자연스럽게 인사하게 된다”며 “거부감 없이 항상 좋은 느낌을 받는다”고 답했다.
양씨는 “내가 계속 그 사람한테 좋게 대했을 때 그 사람이 변화하는 걸 보고 나니 어디 가서 누가 나를 시기하고 미워해도 개의치 않는다”고 미소 지었다.
◆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운 ‘벽돌 다섯 장’의 힘
몸과 마음이 강인해 보이는 양씨지만 사실 그는 한때 걷기도 어려울 정도로 큰 병을 앓고 생계마저 무너진 시기가 있었다.
2003년 레이노 증후군과 갑상샘 항진증으로 쓰러진 그는 당시 ‘혈관 나이가 99세’라며 ‘나중에 팔을 자를 수도 있고 어딘가 막혀서 죽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 때문에 기존 미술학원 일과 집을 정리해야 했던 양씨네 가족은 개를 기르던 축사를 고쳐 보금자리로 삼아야 했다.
하지만 양씨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포기하고 집을 고치면서 건강해진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오후 6시에 잠들고 새벽 2시에 일어났다. 남들이 잠든 시간, 풀을 뽑고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며 6년 8개월 동안 집을 지어 올렸다.
“벽돌 다섯 장 쌓고 힘들면 거기서 끝 해요. 내일 또 하면 되니까.”
하루에 조금씩 쌓아 올린 벽돌은 어느새 그의 삶의 방식이 됐다. 그가 15년 동안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이다. 그는 “먼저 실천하고 잘못되면 고쳐 나가자고 생각한다”며 “시작하기 전에 ‘이게 잘 될까’ 하면 못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오후 6∼7시쯤에 잠들어 새벽 1∼2시쯤 일어난다. 운동과 드럼 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한 뒤 봉사에 나서고, 일을 마치면 교통봉사에 사용하는 장갑과 팔토시를 손수 빨아 다음 날을 준비한다.
◆ “힘들 땐 띠를 차라”
양씨가 15년 동안 봉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또 다른 원동력은 ‘진정한 즐거움에서 오는 힘’이었다.
양씨는 “아무리 아파도 봉사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안 아팠다”며 “가식이 아닌 즐거움이 주는 행복의 힘이 너무 신기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씨는 힘들수록 자신을 움직일 환경부터 만든다. 그는 힘들 때 띠를 차라고 말한다.
양씨에게 어깨띠는 단순한 봉사복이 아니다. 그는 “띠를 차면 사람들이 한눈에 보니 자세를 갖추게 된다”며 “불량한 행동을 안 하고 자세도 바르게 되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식당에서도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겨 시간이 흐른 뒤 연락을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양씨는 15년간의 봉사활동을 회상하며 “차를 팔기 위해 시작한 봉사였는데 많은 걸 배웠어요. ‘나는 돈은 없지만 뭐든지 할 수 있다. 단지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즐기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 실천이 일으키는 변화의 힘을 믿고 있다.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우리 온 국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재미있게 봉사한다고 하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봉사하기가 힘들게 느껴지겠지만 하고 나면 오히려 하고 있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양씨는 교통봉사를 앞으로 언제까지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자신이 되는 여건 내에서라면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같은 자리를 지킬 계획이라고 했다.
양씨는 이제 구리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구리역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모(64)씨는 “역 앞이 위험한데 사고가 안 나도록 아침에 봉사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이제 없으면 오히려 허전할 것 같다”고 전했다.
동인초 2학년 김시아양은 “아저씨가 먼저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우리도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한다”고 웃었다. 김양은 “아저씨가 없으면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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