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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여성 일왕 ‘찬성’인데…日 정치권이 ‘남계 혈통’ 고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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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imsu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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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 다수는 여성 일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지만, 일본 정치권의 논의는 여전히 ‘남계(남성 일왕의 후손) 남자’ 원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 고려대 특임교수는 이 배경에 일왕가의 남계 혈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믿음을 일본의 우월함으로 여기는 보수·우파의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호사카 유지 고려대 특임교수가 29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신간 ‘극우의 신화 일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성균 기자
호사카 유지 고려대 특임교수가 29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신간 ‘극우의 신화 일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성균 기자

호사카 교수는 29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신간 ‘극우의 신화 일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우파의 역사관에서는 일왕이 일본 신화의 최고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는 관념이 국가 정통성의 핵심으로 작동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왕 혈통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논리가 일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논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 여론은 ‘여성 일왕’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23∼24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여성 일왕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2%로, 반대 10%를 크게 웃돌았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7%였다. 일본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여성이 일왕이 되는 데 찬성한다는 뜻이다.

 

여성 일왕 찬성 여론은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에 대한 높은 지지와도 맞물려 있다. 아이코 공주는 현 일왕의 유일한 자녀라는 점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후계자로 인식되고 있다. 성인이 된 뒤 일본적십자사 근무와 공무를 병행하며 차분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쌓은 점도 호감도를 높인 배경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은 다르다. 일본 왕실의 구성과 왕위 계승, 운영을 규정한 ‘황실전범’은 왕위를 ‘황통에 속하는 남계 남자’가 계승한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아이코 공주는 왕위 계승권이 없다. 현재 계승 순위는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왕세제, 그의 아들 히사히토 친왕 등 남성 왕족에게만 열려 있다.

 

일본 정치권이 최근 추진하는 황실전범 개정 논의도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25일 일본 중의원 전체회의에는 황실전범 개정안 요강이 제출됐다. 핵심은 전후 왕적을 이탈한 옛 궁가의 남계 남자를 양자로 맞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여성에게 왕위 계승권을 주는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첫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여성 일왕 인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황실전범은 황위가 황통에 속하는 남계 남자에 의해 계승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여성 정치인이 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여성 일왕 문제에서는 보수 정치권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핵심은 일본 보수 정치권이 ‘여성이 일왕이 되면 안 된다’고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역사에는 실제로 여성 일왕이 존재했다. 다만 이들은 모두 부계 혈통으로 왕통에 속한 여성이었다. 일본 보수 세력이 더 경계하는 것은 여성 일왕을 인정하는 순간, 그 여성 일왕의 자녀가 황위를 잇는 ‘여계 일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 일왕과 여계 일왕은 다르다. 여성 일왕은 여성이 일왕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반면 여계 일왕은 어머니 쪽 혈통을 통해 왕위를 잇는 것을 뜻한다. 일본 보수 세력은 여성 일왕을 인정하면 결국 여계 일왕까지 허용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그렇게 되면 ‘남계로 이어져 온 왕통’이라는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호사카 교수는 이같은 일본 보수 정치권의 행보가 일본 우파의 국가관과 연결돼 있다고 봤다. 일왕가가 신화시대부터 남계 혈통으로 이어져 왔다는 서사가 일본 국가의 정통성을 떠받치는 논리로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흐름을 일본의 전후 체제 수정 움직임과도 연결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보수·극우 세력은 1945년 이전의 일본을 가장 강한 시대였다고 보고, 헌법 개정과 일왕의 국가원수화, 긴급사태조항 신설, 자위대 명기 등을 통해 전후 체제를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호사카 교수는 도쿄대 졸업 후 1988년부터 한일 관계 연구를 위해 서울에서 거주했다. 2003년 한국 체류 15년 만에 귀화해 독도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연구했다.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특임교수이며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명예소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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