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닛·프리즘 협업무대 국내 초연
슬라임 등 활용… 실험적 연출 눈길
공연 시간 정각에야 문 열린 극장 안으로 관객은 줄지어 들어갔다. 직원 안내로 도착한 곳은 막 내린 무대 안. 무대 중앙에는 어른이 양팔을 벌린 너비의 사각 기둥 두 개가 섰다. 사람 키 높이의 검은 받침 위로 2m 남짓한 유리 상자가 놓였고, 그 위에선 빛기둥이 내려왔다. 한참을 기다리자 바닥에서 무용수가 서서히 떠올랐다. 벨기에 출신 안무가 다미앵 잘레와 일본 시각예술가 나와 고헤이가 28일 서울 강남 GS아트센터에서 세계 초연한 ‘프리즘’은 그렇게 시작됐다.
빛이 굴절되는 프리즘 시트를 입힌 상자 안에서 무용수의 몸은 빛의 반사와 굴절을 따라 한자리에서도 여러 각도로 나뉘어 보였다. 관절을 극한까지 여닫는 움직임이 점차 가속했다. 한 호흡도 멈추지 않는 춤 속에서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반영인지 경계가 무너졌다. 어느 순간 상자 안의 몸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절정부에 이르러선 무용수가 한 명씩 늘어나면서 몸은 둘로 늘고, 네 개의 손과 발이 빚어내는 움직임은 낯선 감각을 일깨웠다.
두 예술가는 24∼26일에는 같은 무대에서 ‘플래닛(방랑자·사진)’을 선보였다. 비상구 유도등까지 꺼져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극장에서 시작된 무대였다. 어둠에 눈이 익을 무렵, 검게 반짝이는 바닥이 우주의 표면처럼 드러났다. 그 위에 한데 엉겨 있던 몸 더미가 점차 풀리듯 갈라졌다. 심연에서 갈라져 나온 무용수 8인의 몸은 갈대처럼 바닥에 붙들렸다. 발목까지 잠긴 상태로 몸은 중력을 거스르듯 기울고 버텼다.때로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몸짓은 아직 형상이 갈리지 않은 상고시대의 혼돈 같았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 후반, 천장에서 끈적한 슬라임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몸들은 그 자리에 굳어 가며 표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생명이 태어나 다시 물질로 돌아가기까지, 한 주기를 압축한 듯 흘러가는 무대였다.
이렇듯 두 작품은 무용이라기보다 움직이는 그림이자 움직이는 조각에 가까웠다.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와는 “잘레가 무용수를 안무하듯 자신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재료를 안무한다”고 설명했다. 신체의 덧없음과 조각의 영원성이 겹쳐지는 지점을 협업의 성취로 꼽았다. 잘레는 우리 몸이 오랜 세월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무용과 미술의 경계에서, 현대무용의 전위를 몸으로 체감하게 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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