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선을 보인 픽사의 ‘토이 스토리5’가 개봉 주말에만 전 세계에서 3억12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사상 최대 규모의 오프닝을 기록했다. 7년 만에 돌아온 다섯 번째 이야기의 부제는 ‘장난감, 기술을 만나다(Toy meets Tech)’이다.
영화는 장난감들의 여덟 살 주인 보니에게 ‘릴리패드(Lilypad)’라는 똑똑한 태블릿이 주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의 사회화를 돕기 위해 부모가 사준 기기였지만, 보니는 점점 화면에 빠져들고 ‘우디’와 ‘버즈’, ‘제시’는 방 한구석으로 밀려난다. 주목할 점은 영화가 기술과 장난감의 승부로 결말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릴리패드 역시 끝내 보니를 돕는 데 성공하고, 밀려난 장난감들은 낙담하는 대신 서로 의기투합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대립을 넘어 함께 힘을 모은 끝에 보니는 또래와의 진짜 우정을 회복한다. 승리의 주인공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토이 스토리는 처음부터 기술의 영화로 불리었다. 1995년 1편은 영화사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영상 기술의 역사를 ‘토이 스토리 이전과 이후’로 갈랐다. 전 세계에서 약 3억7000만달러를 벌었고,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었다. 감독 존 래세터는 이 작품으로 특별공로 오스카상을 받았다.
이후의 기록도 화려하다. 2010년 토이 스토리3는 애니메이션 최초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 10억달러를 돌파했고,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세 번째 애니메이션이 됐다. 2019년 토이 스토리4는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두 번 수상한 최초의 프랜차이즈라는 기록을 남겼다. 다섯 편을 합친 누적 흥행은 33억달러를 넘어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로 꼽힌다. 평단의 평가도 독보적이다. 영화 평점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 기준 1·2편은 100%, 3·4·5편은 각각 98%, 97%로, 94%로 토이 스토리는 역대 가장 호평받은 프랜차이즈로 거론된다.
관객이 토이 스토리를 기억하는 방식은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디와 버즈를, 그리고 그들의 대사를 기억한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넌 친구가 있잖아(You’ve got a friend in me)” 같은 말들이다. 래세터 감독은 이 영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도 이야기, 두 번째도 이야기다.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다.”
지난해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다. 당시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미·중을 비롯한 21개 회원국의 입장차를 밤샘 협상으로 중재해 ‘경주선언’과 ‘APEC 인공지능(AI) 이니셔티브’,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 등 성과 문서 3건을 만장일치로 채택시켰다. AI 협력 공동 선언은 미중이 모두 참여한 첫 정상급 합의문에 담겼고, 교착됐던 한·미 관세협상 타결과 원·위안 통화스와프 복원도 같은 주간에 끌어냈다.
외신과 국제사회가 더 오래 기억한 것은 그 문서나 수치가 아니었다. 미·중 대립에도 균형을 잡은 ‘가교(架橋) 외교’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APEC 주간에 열린 한미·한중 정상외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건네며 신라의 역사를 소개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막걸리로 건배했다. 경쟁의 한복판에서 관계를 잇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주요 외신은 한국이 보여준 ‘중견국 리더십’에 주목했다. 한 외신은 계엄 사태 10개월 만의 국제무대 복귀를 두고 “대한민국이 다시 제자리를 되찾았다”고 평가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APEC이 내건 3대 과제 역시 ‘연결’·‘혁신’·‘번영’이었다. 기술과 지표가 아니라 연결이 기억된다는 점에서 영화와 외교는 같은 문법을 공유한다.
문제는 같은 연결의 과제를 국내에서 마주할 때 그 현실이 훨씬 복잡하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 앞에는 수많은 숫자가 놓여 있다. 코스피 상승과 AI 산업 육성, 반도체 경쟁이 한편에 있고, 미국과의 관세전쟁, 요동치는 환율, 미중 사이의 균형추 역할이 다른 한편에 있다. 안으로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청년 일자리와 주택 문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사법개혁까지 과제가 다층적이다.
이들 현안을 하나로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양극화(兩極化)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도 ‘거시경제 적극 관리’, ‘잠재성장률 반등’, ‘국민균형성장 및 양극화 극복’, ‘대도약 기반 강화’를 4대 방향으로 제시하며, 양극화 극복을 핵심축으로 명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호황과 주식시장 급성장이라는 눈부신 성과 이면에 자산 양극화라는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역대급 성과급이나 역대급 코스피도 나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는 청년들의 소외감을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또 안정적 일자리와 소득으로 자산을 형성할 기회조차 부족한 2030 세대를 두고 “현시대의 가장 큰 소외자들”이라 불렀다. 같은 시기 노동계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는데, 자산시장 과열 속 노동 가치의 평가절하를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첫째도 물가, 둘째도 물가”라며 민생 안정을 거듭 강조했다.
대외 여건도 부담이다. 작년 7월 타결됐다고 발표된 한미 관세 합의에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포함됐고, 그 부담은 고환율 압력으로 이어졌다. 올해 들어 미국의 관세 재인상 위협이 불거지면서 미중 사이에서 실익을 지키려는 이재명정부 ‘실용 외교’의 입지도 시험대에 올랐다. 지표 이면의 격차는 단순한 경제문제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영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토이 스토리5에서 보니가 태블릿에 매달린 동기가 친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듯, 갈등의 뿌리에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절의 불안이 자리한다.
토이 스토리의 상징인 주제가 ‘넌 친구가 있잖아(You’ve got a friend in me)’는 영화 음악가 랜디 뉴먼이 1편부터 다섯 편 내내 변주해 온 곡이다. 앤디가 대학으로 떠나면서 장난감과 작별하던 토이 스토리3 우디의 대사 ‘잘 가, 친구(So long, partner)’는 세대를 막론하고 관객을 울린 명장면으로 꼽힌다. 글도 모르는 아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어 같은 장면에서 웃고 우는 보편적 공감, 그 비결은 화려한 그래픽이 아니라 우정과 연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통합(統合)은 잘못을 덮는 화해나 책임을 묻지 않는 봉합과는 다르다. 영화 속 장난감들도 보니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았고, 제 역할과 자리를 지키면서 관계를 회복했다. 통합 역시 원칙과 책임의 토대 위에서 시대의 변화에 밀려나고 성장의 과실에서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는 일이다. 경주선언이 명문화한 ‘포용적 성장’을 돌이켜보면 곧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자는 원칙이 안으로 향할 때의 다른 이름이 통합인 셈이다.
정치와 행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함의다. 코스피나 거시지표 같은 ‘기술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어려움에 눈높이를 맞추는 ‘이야기’다. 양극화로 갈라진 두 극을 다시 잇는 일, 곧 통합이 현재의 화려한 성장지표가 풀지 못한 숙제의 본질이다. 세대 간 벽을 허물고 지역 간 격차를 좁히며 소외된 이들을 ‘기회의 사다리’로 끌어안는 통합의 행정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누군가를 이해하는 정치, 즉 지역과 세대계층 간 기회를 연결하는 정치다.
이 대통령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경쟁을 연결로 바꾸는 리더십을 보여준 바 있다. 남은 과제는 국민주권정부 출범 후 일관되게 보여왔던 양극화 회복을 위한 노력이 코스피 9000시대 소외당하고 갈라진 틈을 찾아서 지속적으로 이어내는 일이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 전략의 4대 방향에 국민균형성장과 양극화 극복을 올리고, 대통령이 청년의 소외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 길에 이미 들어섰다는 신호로 읽힌다.
국민은 몇년 후엔 오늘날 코스피나 환율 수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 자신이 존중받았는지, 나라가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했는지는 오래 기억한다. 디지털 패드와 아날로그 장난감이 끝내 보니의 우정을 되살렸듯 가교 외교로 세계를 이었던 그 손길이 세대와 지역, 계층 사이 갈라진 대한민국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디와 버즈가 외친 상징적인 대사는 이제 양극화의 그늘을 걷어내고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야 할 과제와 겹친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지표의 화려함에 안주하지 않고 가장 소외된 가계와 청년의 삶으로 들어가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이어진다면 그 성과는 어떤 정책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향해야 할 여정 역시 성장만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김정훈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 UN SDGs 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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