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와 아삭한 배추쌈은 생각만으로도 입맛을 돋운다. 배추는 김치의 주재료이자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식탁에 오르는 가장 익숙한 채소다. 그래서인지 마트나 전통시장에서 배추값이 오르내리면 다른 채소보다 더 크게, 더 직접적으로 체감된다. 언론이 배추값을 뉴스 헤드라인으로 자주 다루는 이유도 결국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작물이다. 이 때문에 한여름에는 주로 대관령처럼 해발 600m가 넘는 높은 고랭지 산지에서 생산된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배추밭의 풍경은 한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최근 그 속사정은 눈에 띄게 가혹해지고 있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잦아지고, 같은 땅에서 재배가 반복되면서 병해충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농업인들은 매년 여름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배추를 길러내고 있다.
뜨거운 현장을 둘러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제 여름철 배추 수급 문제는 가격이 폭등한 뒤에야 공급을 늘리는 사후 처방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생산부터 저장,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계하는 선제적인 농업기술만이 근본적인 답을 줄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봄배추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수확 후 품질관리기술이다. 기후가 좋아 잘 자란 봄철 배추를 한여름까지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면, 여름철 공급 부족을 해결할 가장 든든한 완충재가 된다. 이를 위해 배추의 숨 쉬는 속도를 늦추는 특수포장기술과 첨단 공기제어기술을 현장에 부지런히 보급 중이다.
아무리 보관을 잘하더라도 애초에 배추가 밭에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고랭지 배추의 안정적인 생산을 돕는 선제적 병해충 방제기술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름철 배추를 말라 죽게 만드는 병해충을 막기 위해 친환경 미생물제를 투입하고, 땅의 힘을 기르는 돌려짓기 등 토양관리기술을 함께 보급하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흙을 파고 모종을 심는 고된 농작업을 대신할 기계화도 중요한 과제다. 기계화는 갈수록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생산지 자체를 넓히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그동안 여름철 배추는 고랭지에 주로 의존해 왔지만, 최근에는 400~600m 수준의 준고랭지에서도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저온성 필름과 미세살수장치 등을 활용해 고온기 생육을 돕는 방식이다. 특정 지역에 생산이 집중된 구조를 완화하고 기상 위험을 분산하는 의미 있는 시도다.
이러한 기술들은 각각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저장기술은 공급의 빈틈을 메우고, 병해충 방제기술은 생산량을 지키며, 기계화는 농가의 노동 부담을 덜어준다. 아울러 재배지 다변화는 기후 위험에 대한 대응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술들이 현장에서 함께 작동할 때, 농민은 밭에서 웃고 국민은 싱싱하고 아삭한 배추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보는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안정적인 배추 수급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의 땀방울과 연구자의 열정, 그리고 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기후위기 속에서도 답을 찾아갈 수 있다. 우리가 사계절 내내 신선한 배추를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 그 이면에는 식탁 물가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든든한 농업 과학기술의 힘이 있다.
김대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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